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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발길을 멈추고 주저앉고 말면 우리 삶은 거기서 끝나게 됨이라 - 이청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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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4. 13. 00:42 기억의 습작

 훌륭한 작가는 그가 생각하는 것 이상은 더 말하지 않는다. 말한다는 것은 이를테면 표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동시에 사고의 실현을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걷는다는 것도 어떤 목적에 도달하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욕구의 실현인 것이다. 그러나 그 실현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지는 - 그것이 목적에 맞추어 정확하게 이루어지든 아니면 마음내키는 대로 부정확하게 이루어져 소기의 목적에서 벗어나든 - 길을 가는 사람의 평소 훈련이 어떠한가에 달려있다. 그가 자제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또 불필요하게 샛길로 어슬렁거리는 움직임을 피하면 피할수록 그의 행동 하나하나는 충분히 제 구실을 하게 되고 또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목적에 더 부합하게 되는 것이다.

 
나쁜 작가에게는 많은 생각이 떠오르는 법이다. 그는 이러한 많은 아이디어 속에서 마치 훈련을 받지 못한 조악한 주자가 스윙이 큰 암팡지지 않은 육신의 동작 속에서 허우적대듯 자기 자신의 정력을 탕진해 버린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그가 생각하는 바를 한번도 냉철하게 얘기할 수가 없는 것이다. 훌륭한 작가의 재능이란, 그의 사고에 정신적으로 철저하게 훈련된 어떤 육체가 제공하는 연기와 그 연기의 스타일을 부여하는 일이다. 그는 그가 생각해던 것 이상을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따라서 글을 쓰는 행위는 그 자신에게가 아니라 다만 그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에만 도움을 주게 되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 글을 잘 쓴다는 것, 발터벤야민의 문예이론, 민음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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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9. 16:24 생활의 발견

 핸드폰 번호를 바꾼지 한달. 하지만 이 번호의 전주인은 아무에게도 자신이 번호를 바꾸었음을 알리지 않았나보다. 아직도 하루에 한번꼴로 전주인을 찾는 전화나 문자가 온다. 전주인을 찾는 전화는 대체로 적어도 목소리로는 나이 좀 있어보이는 중장년이었는데, 어제 온 문자는 평소(?)와 다르게 매우 젊고, 발랄하고, 귀여운(척하는) 말투였다. 하지만 발랄하고 귀여워봤자 그건 전주인에게나 그런거지, 나한테는 상관 없는일. 결국 참다못해 번호가 바뀌었고, 전주인의 바뀐번호를 알게되거든 주변 사람들에게 번호바꿨다고 제발, 부탁하건데 연락을 돌려달라고 전해주라고 답을 했다.  어쩌면 나의 분노는 질투심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받고 거는 전화보다 전주인에게 걸려오는 전화가 더 많다. 이런 인기쟁이같으니. 아무튼 덕분에  난 그의 이름과 사는곳과 어디서 쇼핑했는지까지 다 안다. 정말로 그 이상은 알고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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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9. 16:16 생활의 발견


 오늘 수업준비를 어제 밤에 마무리하고 잘려고 했지만, 너무나 피곤해서 결국 그리하지 못하고 조금 일찍 일어나서 마무리지었다. 사실 그렇다고 오늘 아침에 과연 마무리를 했냐면, 그렇게 하지도 못했다. 결국 찝찝한 마음으로 전철을 탔고, 자리에 앉아서 읽어야 할 것들을 마저 봐야 했지만, 충분히 잠을 못자서 그랬는지 꾸벅꾸벅 졸았다. 졸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낙성대 역이었다. 그래서 급한 마음에 내렸는데 생각해보니 우산을 놓고 내렸다. 다시 전철에 올라타서 우산을 집어들고 다시 나오려는 순간, 전철 문은 닫혀서 덕분에 입구역까지 갔다. 낙성대역으로 돌아오니, 마을버스 줄은 저 멀리 횡단보도 너머까지 이어졌다. (8년 등교사(史)에서 가장 긴 줄이지 않았나, 싶다. 본부가 '회심의 카드'로 마련한 방안인 9시반 수업이 순간적인 적체 현상을 만성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하는 나의 걱정은 이렇게 들어맞았다.) 뒤늦게 버스에서 허겁지겁 읽고 발표문도 고쳤지만, 정신없이 학교에 오다보니 수업시간 내내 정신이 멍했던 것도 있고해서 뒤늦은 마무리는 별 효과를 보지 못한 것 같다. 쓰다보니 거의 모든 문장이 부정문이네. 카프카는 사람 여러명 힘들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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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6. 00:52 기억의 습작

빨래3

 

 정신이 얼얼하게

 아니 온몸이 얼얼하게

 누군가 나를 물 속에 처넣고

 빡빡 비벼댔으면 좋겠다

 옛날식으로 나무 방망이로 퍽퍽

 두들겨 준다면 더욱 좋겠다

 혼, 비, 백, 산

 알량한 자의식일랑 거품으로 터져버리고

 주장할 색깔도, 모양도

 형편없이 무너져내리고 싶다

 땟국물 한 방울 남지 않게

 단단히 비틀어 짜다오

 정신이 번쩍 나게

 맑은 물에 여러번 헹궈다오

 솔기 속에 숨은

 실오라기 하나 남지 않도록

 탈탈 털어다오

 물먹어 무거워진 몸

 빨랫줄에 널브러지면

 아무 생각 없이 두 팔을 축 늘어뜨리고

 비바람에 몸을 맡기겠다

 햇볕을 잔뜩 포식해

 햇살이 구운 바삭한 과자같이 되겠다

 무수한 잔금들 위에

 시원한 물이 뿜어지고

 뜨겁게 달구어진 육중한 쇳덩이가

 주름을 펴주면

 그렇게 뼛속까지 개운한 단련도 없으리라

 깃을 단정히 여미고

 두 팔을 개켜 반듯이 접은 몸 위에 모아다오

 다시 또 걸어나가

 먼지 속에 엎어질 몸이지만

 빈틈없이 나 자신에 쪼개어져

 정화된 이 순간을

 온전히 누리게 해다오

 이 보송한 고요를 방해하지 말아다오

 

         이윤림, 생일, 문학동네,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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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6. 00:50 기억의 습작

水簾之室

 

내가 사랑하는 이 방에

비가 오면 물구슬발 드리워지니

한번 방문해주게

그때가 가장 아름답다네

그때를 가장 좋아했다네

와서 내가 없더라도

구태여 찾지 말게

추억 같은 걸 서랍에서 뒤지지도 말게

내가 사랑하던 방이니

그대의 마음에도 들었으면 하네

그뿐이네

아무것도 찾지 말고, 하지 말고

물구슬발 부딪치는 소리가 어떻게 나나

조용히 귀기울이다 가게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쉬다 가게

 

 이윤림, 생일, 문학동네,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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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5. 15:11 기억의 습작
요즘 재미붙이고 있는 트위터에 에밀레종님께서 가입하셨다고 한다.

실은 아이폰 화면 캡쳐하는 것도 해보고 아이폰으로 블로그질도 시험삼아서 해볼겸 올리는거다. 오오 아이폰느님 오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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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2. 28. 17:25 생활의 발견

http://cool120p.egloos.com/4347250 에서 퍼옴


하지만 이런거 없고, 이때도 가카는 일했다는게 좀 중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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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둘째주부터 헬스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 먹고 제대로 다시 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 최근 관성화된 탓에 온갖 예능 프로를 보면서 걷거나 자전거를 타도 좀 지겨워졌다. 다행히도 때마침 동계올림픽이 시작했으니, 정치적으로는 뭔가 좀 이용당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했지만 헬스장 가는데는 약간이나마 다시 동기부여가 생겼었다. 특히 싸이클할때는 스피드 스케이팅이나 쇼트트랙 하는거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페달을 미친듯이 밟았는데, 문득 정신 차리고 주변을 돌아보니 다들 그러더라. -_-

동계올림픽을 SBS가 독점 중계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때 나는 사실 이것도 뭔가 정치적인 음모가 있는게 아닐까 생각했었다. MBC는 '채찍'으로 길들여야겠고, KBS는 이미 우리편이고, 평소에도 비교적 우호적이긴 하지만 SBS에 '당근'을 줘서 보다 우리편으로 만들자, 이런게 아닐까? 하지만 뭐 설마 그럴까 싶어서 곧 생각하기를 그만두긴 했지만. (하지만 서글픈 사실은 이 어처구니 없는 음모설이 왠지 맞을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수 없다는 거다....) 아무튼 독점 중계는 솔직히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아던 것 같다. 여러 방송사가 같이 중계를 하면 아무래도 비인기종목은 여러모로 소외를 받을텐데, 한 방송사만 중계를 하다보니까 거의 모든 종목을 아우를수 있었고, 매니악한 사람들의 블로그를 뒤져보니 'SBS는 인기종목 해설은 병맛인데 비인기종목 해설은 정말 잘한다. (그래서 안습이다)'라는 글들도 많던데, 자타공인 비전문가인 내가 보기에도 좀 그런 경향이 있으니까(적어도 전자는 나도 알 수 있을 정도다..), 타방송사는 올림픽따위에 관심 없는 사람들을 위해 평소대로 방송하면 크진 않겠지만 반사이익도 얻을테고. 동계올림픽 같은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를 3사가 돌아가면서 독점중계를 하면 좋겠다, 싶지만, 독점 과정에도 앞으로 뭔가 정치적인 요소가 제법 많이 개입될 것 같아서 무작정 반길 수만은 없는 듯도 싶다.

이제 동계올림픽도 내일 폐막식을 하고 끝난다. 그리고 방학도 끝났다. 며칠전부터 새학기, (당분간은) 마지막 수업학기라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다짐을 하고 있지만, 솔직히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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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단을 주제로 한 영화는 많지만, 송강호는 분단과 관련된 영화에 유난히 많이 나온 것 같다. 물론 송강호 본인이 출연한 영화도 많기 때문에 확률 통계상으로 당연한(?)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송강호 못지 않게 '분단 영화'(라는 장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에 흔적을 남긴 배우가 더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짧은 영화편력으로는 송강호만큼이나 분단영화와 관련되서 생각나는 배우는 없다. 최근 나온 "의형제"는 "쉬리"와 "JSA"에 이어 세번째인데, (굳이 하나를 더하자면 "효자동 이발사"도 포함 될 수 있겠다.) 앞선 두 영화와 영화가 상영된 시기를 생각해보면 확실히 촬영당시의 관점 내지 사회적 분위기가 적지않게 반영된 것 같다. "서울 불바다" 발언이 나왔을때 쯤해서 북한의 대남 테러를 주제로 한 "쉬리"가 나왔고, 남북공동정상회담이 성사된 즈음에 "JSA"가 나왔으니 말이다.

 그럼 의형제는? 물론 뉴스를 통해서 6.15 남북정상회담과 북한의 핵실험이라는 시대적 상황(그리고 이 두 사건은 영화 전개의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이 드러나긴 한다. 하지만 앞의 두 영화들에 비해서는 현실의 어떤 모습이 뚜렷하게 나타나는것 같지는 않다. 송지원(강동원 분)은 북한 정부에 어느 정도 믿음을 갖고 있긴 하지만, 진짜 체제에 대한 신뢰라기 보다는 일종의 '의리'에서 그런 것이고, 이러한 믿음은 이한규(송강호 분)에서는 더더욱 희박하게 드러난다. 국정원에서 방첩활동을 하지만, 업무에 대한 자세와 불평불만은 투철한 대북관이나 국가관, 공적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말그대로 평범한 샐러리맨의 영업활동과 별 다를바 없어 보인다. 오히려 이 두 사람은 체제나 사상보다는 북에 남겨둔 가족 때문에, 혹은 "양육비" 때문에 활동하는 '생계형' 인간들이고, 조금 더 과장해서 말하면 지극히 '자본주의적' 인간들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들에게 국가보다는 가정이 훨씬 더 최우선인 점은 집나간 외국인 여성들을 잡아 집으로 돌려보내는 모습이 테러/첩보활동 이상으로 나타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결국 분단에 대한 시각은 90년대 '불바다'와 2000년대 초반 '우정'을 거쳐서 2010년에는 '무관심'으로 대체된 것은 아닐까 싶다. 남북 정상이 만나든, 북한이 핵실험을 하든 내 가족을 먹여 살리고 함께할 수 있으면 되는 일 아니냐, 하는 생각 말이다. 어쩌면 이 '무관심'을 남북이 모두 갖게 되면 그럼 그 나름대로 또 새로운 국면을 (적어도 영화에서는) 시사하는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문득 해봤다. 하지만 최근의 사건이나 동향들을 살펴보았을 때 북한은 여전히 관심을 얻고자 부던히 애를 쓰는 것 같아 그 무관심이 일방향적인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이러다 '쉬리'와 비슷한 영화가 다시 나올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너무 앞서 나간 것 같아 그만두었다.


p.s : "쉬리"와 "JSA" 두 영화을 그때 남북관계의 반영물로 바라본 글을 이전에 봤었다. 영화를 보다가 생각나서 조금 더 연장을 시켜봤던 것이고. 씨네꼼에 활동하던 모씨께서 스누나우에 썼던 글로 기억한다. 대학도 입학하기전에 봤던 글이라, 유감스럽게도 그 이상은 출처를 밝힐수도, 확인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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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2. 9. 23:58 생활의 발견

 소심한 마음에 한술 더떠서 쪼잔함에 가까운 완벽주의도 있어서 항상 남들보다 한박자 서두른다. 그래서 준비를 잘하냐. 그러면 애시당초에 이런글 쓰지도 않는다. 먼저 달리니 쓰러지는건 술 마실때만 그러는게 아니다. 결국 남들 시작할때쯤에는 어느정도 준비도 했겠다, 지친김에 잠깐 쉬자는 마음이 생긴다. 그러다 꽤 오랫동안 정신 못차린다. 결국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다시 그 소심한 마음과 쪼잔한 완벽주의로 마련한 준비한 것들은 봐야하지만 시간내에는 결코 보지 못할, 비장의 무기가 비수로 바뀌고 만다. 그러니 마음만 급해져 결국 아무것도 못하는건 당연한 일. 이렇게 허둥대다가 '운명의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에 마음에 평온해진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일, 하다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그 마음. 결국 그렇게 주어진 시험이나 발표에 임하게 되고, 뒤돌아서서는 또 다짐한다. 다음엔 그러지 말아야지. 그런데 또 그런다. 누가 그랬던가, 나이 스물 넘으면 성격 고치기 힘들다고. 나는 지금도 또 그러고 있다. 사실 이런글 끄적이고 있다는건 어느정도 마음에 그려둔 폭풍은 지나가고 실제 폭풍(!)을 눈앞에 두고서 무념무상의 경지에 올랐다는 얘기다.

 ...라는 얘기를 2007년 10월 네이버 블로그에 썼다. 그리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이런 변함없는 인간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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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2. 3. 21:28 기억의 습작

최근 읽었던 어느 책에 번역비평과 관련된 글이 있었다. 번역자로서 '동업자 정신'과 독자로서 '소비자 정신(?)' 사이를 저자는 고민스레 왔다갔다 하고 있었고, 이제는 알 사람은 다 아는 비밀인 우리나라 번역문화에 대한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인용구의 번역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를 지었다.

"There is an optimism that consists in saying that things couldn't be better"
 - Michel Foucault, (2000) [1981] 'So is it important to think? '. In J. Faubion (ed.). Tr. Robert Hurley and others. Power The Essential Works of Michel Foucault 1954-1984. Volume Three. New York: New Press, p. 458.

"보통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고 말하는 게 낙관주의다.” 정도로 번역될 듯싶겠지만, “세상이 더 나아질 것 같지 않다고 말하는 것 속에 이미 낙관주의가 존재한다.” 라는 ‘특이한’ 번역 덕분에 우리의 번역문화에 대해 낙관하게 되었다." (이현우, 『로쟈의 저공비행』, 산책자, 2009)

읽고나니 항상 '뭔가 아니다 싶을 때'마다(사실 요즘 늘 드는 생각이기도 하다.) '지금보다 최악일 수는 없겠지'라며 자기 위로 삼던 내 모습과 겹쳐졌다. 그래서 나도 낙관주의자란 말인가? 그건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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