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규" 님의 점수는 1,000점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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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enjoycell.com/ 가보면 세가지 평가를 할 수 있음. 가치평가/연애능숙도/상대방평가.
가치평가도 해봤는데(생각해보니 전에 해봤던것 같기도) 이건 내가 생각하는거랑 정반대로 나와서 패스.
"이재규" 님의 점수는 1,000점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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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한 가지 흠집을 무마하는데 열 가지 세계관을 내세워 낯빛 한 번 바꾸는 일 없이 스스로를 지켜낸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은 한 줌 봄바람에도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원망하다 끝내 주변과 스스로를 망친다. 비아냥 섞인 세상의 손가락은 주로 후자를 겨냥한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자멸하는 순간, 세상의 손가락들은 가장 빠르고 침통하게 애도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구제한다. 그렇게,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이 조금씩 사라져간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살아남기에 세상은 너무 어른스럽고, 아프다. 언젠가는 그런 사람이 한 명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퍼온 곳
결혼식에 종종 불려갔다는 얘기는 전에도 했지만, 그에 못지 않게 문상 갈일도 많아졌다. 올해만 해도 세번째 문상이었다. 기쁜 일이 아닌 슬픈 일로 찾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다지 내키지 않는 발걸음이지만, 한편으로는 또 그래서 더 찾아가야 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더 '내키지 않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솔직히 말해서 아직은 고인이 되신 분 때문에 가는 일 보다는 남겨진 사람들 때문에 갈 일이 더 많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고인이 되신 분은 내가 입학하기도 전에 정년퇴임하시고 명예교수로 계시던 분이다. 그냥 문상만 가면 끝날 일이었겠지만, 지도교수님의 지도교수님 정도 되시는 분이니 나에게는 Master Grossvater쯤 된다고 해야 할까나, 그래서 다른 대학원생들과는 달리 오래 머물렀었고, 장지까지 따라갔었다.
이전까지 장지까지 다녀온 것은 고3 올라가는 해 겨울에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때는 예비 '고3'이라는 일종의 특권 덕택에 마지막 날 발인 직전에만 가서 장지까지 갔었는데, 그 때에 비해서는 훨씬 조용히, 그리고 (추측컨대) 약간 더 시간이 걸렸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때보다 더 늦게 출발해서 그랬던 것일 수도 있고.
아무튼 모든 절차가 끝나고 공원 묘지 앞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쉬면서 선생님께 고인에 대한 얘기를 잠깐 들었었는데, 돌아가시기 일주일전까지도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것을 예상하지는 않으셨고, 조만간 상태가 호전되면 책을 쓰고 싶다고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20대, 30대, 그리고 지금 자신 조차도 하루 하루는 참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돌아가신 선생님께서는 그 하루가 얼마나 소중할지, 그러니 시간을 아껴서 열심히 잘 살아야 하지 않겠냐는 식으로 마무리를 지으셨다.
딱히 새로울 것도 없고, 오히려 이런 곳에 와서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그런 말씀이셨다. 하지만 그래서 또 조금은 더 귀를 기울여 듣게 되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사실 버스만 타면 멀미를 하는지 금방 잠이 들곤 해서 잘 몰랐지만, 잠깐이나마 깨어 있을때 보았던 서울 근교의 모습과 공원 묘지 주변의 모습은 이제 정말 봄이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봄도 그 별것 아닌 하루만큼이나 짧기 때문에, 아마도 보름 후에는 여름의 기운을 느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였다.
사범대~인문대~중도~학관을 돌아다니면서 마주쳤던 수 많은 교복입은 무리를 보면서 갑자기 소풍왔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을 정도였다. 한참 있다가 '아, 만우절!'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리들을 지나치면서 나도 09학번이고, 교복이 없던 고등학교를 나왔으니 내가 지금 입은 옷도 교복이며, 나도 신입생으로서 교복데이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생각에까지 이르렀었다. 그래서 몇 명한테 만우절 멘트로 시도했었다. 하지만 별로 신통치 않았다. 차라리 평소대로 개그하는게 반응이 더 좋았다는 사실에 약간은 우울해졌다. 그 참에 같이 중세사 수업을 듣는 박모양을 졸지에 예비군 훈련갔다가 무좀 걸려서 고생하게 만들어 웃음거리로 하여 미안해졌다........고 하면 뒤늦은 만우절 농담이 될려나?
사실 요 며칠 사이에 약간 기분이 급저하됐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전적으로 설레발에 가까운 내 망상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기분좋게 꿈꾸다가 일어나보니 현실은 시궁창..까지는 아니더라도 정반대더라, 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무력감이나 피곤함이 실제로 그런 것보다도 배로 느껴지는 것 같고. 드라마나 책 보면 이럴때 사람들은 '뭐 잘못 먹었나' 싶을 정도로 자기 하는 일에 집중하던데, 나도 '이럴때 아니면 언제 그러겠냐'며 해볼려고 했지만 그리되지 않고 있다. 역시 이래서 드라마가 현실감이 떨어진다고 하는거다.
쓰고 있는 사이에 12시가 넘어갔다. 신데렐라처럼 만우절도 끝났다. 그리고 싸이데이가 시작됐다.
내일 결혼하는 H선배는 독문과 교양수업을 같이 들었던 사람이다. 혼자 듣는 수업에서 무작정 아무 조에 꼈는데 알고보니 과/반 모 선배의 대학신문사 후배였고, 그 선배의 험담아닌 험담(?)으로 급친해졌던 것 같기도하고. 사실 그 수업에서 끝날만한 인연이었을 법한데도 계속 연락이 됐다. 아버지가 고등학교 독일어 선생님이시고 독문학도 좋아해서 독문과 대학원도 잠깐 생각해본다고 했지만, 언어의 한계 때문에 단념했다고 했었다(사실 나는 그 '언어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그 교양 수업을 들었던 그 선생님 때문에 속으로는 잘 생각했다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사실 연락을 계속했다고는 하지만, 군입대 이후로 서로 학교에 있는 기간이 달랐기 때문에 그 뒤로 직접 본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싸이월드가 전부였고, 그러다 보자, 보자 서로 말 그대로 노래만 부르다 두달 전에 만날 수 있었다.
그 때 헤어질려고 자리를 일어설 때쯤 우스개소리로 '아버지 연세가 연세다 보니 걱정 좀 덜어드릴려고'라며 3월에 결혼한다고 그랬다. 농담이었지만 어깨 너머로 꽤 오래 사귀었던걸로 알고 있는데, 당연한 수순일게다.
얼마 뒤 청첩장을 받을 주소를 가르쳐주고, 또 얼마 뒤 청첩장을 받았다. 청첩장 안에는 또 작은 청첩장이 들어있었고, 여자든 남자든 같이 올 사람이 있으면(단 한명이 있는데, 위에서 말했던 험담의 대상이었던 그 선배 뿐이다.) 같이 오라는, 결코 친절하지만은 않은 문구가 적혀있었다. 두달 전에 만나서 '신랑/신부측 커플-솔로 스티커 붙여서 알아서 좋은 인연들 만들어 가라는 이벤트를 생각중이다'라는 얘기는 이에 비하면 말 그대로 덕담이었다. 청첩장 블로그를 만든 것도 부족해 이틀 전에 문자까지 받았으니, 이정도면 발병이 나더라도 가야 할 듯하다.
남의 결혼 이야기는 이쯤 하고, 꼭 굳이 부모님 한말씀이 아니더라도 아직 서른은 안됐을 지라도 20대 후반이 된 마당에 결혼은 아직 나의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완전히 남의 이야기만도 아니고, '내 주변'의 이야기가 된 것은 실감하고 있다. 최근까지는 '뭐, 그래, 하면 좋고 못하면 할 수 없는거지'했다가 어느 순간에 '안하면 정말 뭔가 찌질해질것 같다'라는 강박관념(?)으로까지 바뀌어 '하고 싶다'와 '해야 한다'가 묘하게 뒤 섞인 감정을 갖고 있으면서 '내 이야기'가 된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나의 이야기가 될 수는 없다. 처음에는 그저 아직 무수입의 궁핍하지 않은 시대의 궁핍한 학생이라는 위치에서 비롯된 '책임감' 때문이려니 했었다. 하지만 더 생각해보니 내가 누군가와 함께 진심으로 좋아해서 앞으로 살아온 날 그 이상으로 항상 같이 있고 싶어할 수 있을까하는 내 자신의 진정성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드니까 결국에는 '내가 매사에 과연 얼마만큼 진지하기나 했나'하는 생각까지 들면서 뭐가 알 수 없는 회의감까지 들었는데, 한편으로는 이 걱정 또한 나만의 문제가 아니길 하는, 모처럼 진지해졌다 다시 무책임해지는 생각으로 매듭을 지었다. (사실 이렇게 매듭을 지어서 안될 일이기도 하지만)
아무튼 정말정말 좋아서, 혹은 그저 아버지 걱정 덜어들이려고 그런건지, 아니면 모 웹툰에 나온대로 '이 만큼 오래 사귀었는데 포기하면 아까워서'그런 것인지까지 알지도 못하고, 이 블로그를 찾아 올일도 없겠지만, 모쪼록 행복하게 지내시길 바란다. "들여다보려고만 하는 시선을 같은 방향으로 돌려" "좋아하는 사람과 늘 함께 있고 싶다는, 소박하면서도 간절한 희망사항"을 지속시키길 말이다."(법정, 함께 있고 싶어서) 아, 물론 이 말은 과연 그 날이 언제가 될지 모르는 나에게도 하는 말이다.
제 2외국어 시험 성적도 나와봐야 알겠지만,
비공식적으로 정해진 사실을 비공식적으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대학원 합격은 기정사실화되었다고 함.
일단 목표로 했던 첫번째 일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니, 좋아해야 함이 마땅하지만 솔직히 딱히 그렇지도 못하는게 사실이고.(물론 그래도 좋긴하다.)
이제 숲을 보았고, 숲으로 들어가야하는데 나는 겨우 신발끈을 다시 묶은 것 뿐이다.
그래도, 알게모르게 같이 걱정해주고 격려해준 많은 사람들께 일단 감사의 말을 전한다.
좀 제대로 된 감사의 말은 공식적으로 발표가 나면 그때 하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