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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발길을 멈추고 주저앉고 말면 우리 삶은 거기서 끝나게 됨이라 - 이청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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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5. 25. 14:01 생활의 발견


 2년간의 군생활은 의외로 순탄했다. 아, 물론 부대가 너무 '비밀'부대였던 나머지 정작 해당 부대원들도 어떤 일을 했는지 아무도 몰랐을 정도로 비밀스러운 부대여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한가지 확실했던 것은 주변 사람들이 걱정해줬던 것 보다는 훨씬 무난하게 군 생활을 마쳤다는 점이다.

 딱히 이유가 있었는가? 그 흔한 군인정신으로 지목되는 '참을 수 없으면 즐겨라'로 그랬던가? 그건 결코 아니다. 알 사람은 다 알겠지만, 그런 정신 가지고 있어도 1분 후면 '전향'하게 되는게 군대의 현실이다.

 오히려 현실에 대한 체념에서 그럴 수 있었던 것 같은데, 가령 '바로 지금 여기가 최악이고, 빠져나갈 구멍은 없으니 별 수 있나?' 이런 자세. 혹자는 이런 자세야 말로 긍정적인 자세라며 '참을 수 없으면 즐겨라'와 묘하게 연결시키려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내 주의는 긍정적이지 않은 체념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둘은 엄연히 다르다.

 나름 이런 위장작전(?)이 성공했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군대에는 만만치 않은 사람도 오는 법, 이런 나에 대해 의혹(?)의 시선을 보냈던 사람도 있었다. 어쩌면 나의 연기를 간파해서 그랬다기 보다는 그냥 자기들 기준에 내가 '비호감'이라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금이 최악'이라는 체념적 입장은 그 뒤로 생각의 출발점이 된 것 같다.

 사실 그 누가 나와도 나의 정치적 입장을 완벽하게, 하다 못해 50%라도 대변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2년 전 나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 투표에 참여 할 수 없음으로 인해 --- 새로 뽑힌 대통령이 무척 마음에 안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잘해줬으면 했었다. 하지만 혹시나 했던 우려는 역시나, 점점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현실화되었고, 그때마다 분노와 안타까움과 짜증이 마구 뒤섞였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또 생각을 했었다. '이제 볼거 다봤는데 더 최악의 상황이 닥칠까'...만은, 이런 기대는 좀 저버려줘도 아무도 욕하지 않으련만 꼭 기대에 부응해주고 있다. 사실 지금도 '지금 보다 상황이 더 악화될까'하고 있긴하지만, 글쎄, 이미 사람들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서정시가 사라져 버린 시대'에서는 오히려 지금이 '좋았던 시절belle Epoque'임을 알아두고 "현재를 즐기는게carpe diem"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내일은 또 어떤 충격과 공포가 다가올지 모르니까.
posted by Gruenta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