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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발길을 멈추고 주저앉고 말면 우리 삶은 거기서 끝나게 됨이라 - 이청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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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4. 9. 00:06 생활의 발견


 결혼식에 종종 불려갔다는 얘기는 전에도 했지만, 그에 못지 않게 문상 갈일도 많아졌다. 올해만 해도 세번째 문상이었다.  기쁜 일이 아닌 슬픈 일로 찾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다지 내키지 않는 발걸음이지만, 한편으로는 또 그래서 더 찾아가야 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더 '내키지 않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솔직히 말해서 아직은 고인이 되신 분 때문에 가는 일 보다는 남겨진 사람들 때문에 갈 일이 더 많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고인이 되신 분은 내가 입학하기도 전에 정년퇴임하시고 명예교수로 계시던 분이다. 그냥 문상만 가면 끝날 일이었겠지만, 지도교수님의 지도교수님 정도 되시는 분이니 나에게는 Master Grossvater쯤 된다고 해야 할까나, 그래서 다른 대학원생들과는 달리 오래 머물렀었고, 장지까지 따라갔었다.

 이전까지 장지까지 다녀온 것은 고3 올라가는 해 겨울에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때는 예비 '고3'이라는 일종의 특권 덕택에 마지막 날 발인 직전에만 가서 장지까지 갔었는데, 그 때에 비해서는 훨씬 조용히, 그리고 (추측컨대) 약간 더 시간이 걸렸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때보다 더 늦게 출발해서 그랬던 것일 수도 있고.

 아무튼 모든 절차가 끝나고 공원 묘지 앞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쉬면서 선생님께 고인에 대한 얘기를 잠깐 들었었는데, 돌아가시기 일주일전까지도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것을 예상하지는 않으셨고, 조만간 상태가 호전되면 책을 쓰고 싶다고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20대, 30대, 그리고 지금 자신 조차도 하루 하루는 참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돌아가신 선생님께서는 그 하루가 얼마나 소중할지, 그러니 시간을 아껴서 열심히 잘 살아야 하지 않겠냐는 식으로 마무리를 지으셨다.

 딱히 새로울 것도 없고, 오히려 이런 곳에 와서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그런 말씀이셨다. 하지만 그래서 또 조금은 더 귀를 기울여 듣게 되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사실 버스만 타면 멀미를 하는지 금방 잠이 들곤 해서 잘 몰랐지만, 잠깐이나마 깨어 있을때 보았던 서울 근교의 모습과 공원 묘지 주변의 모습은 이제 정말 봄이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봄도 그 별것 아닌 하루만큼이나 짧기 때문에, 아마도 보름 후에는 여름의 기운을 느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였다.

posted by Gruenta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