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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발길을 멈추고 주저앉고 말면 우리 삶은 거기서 끝나게 됨이라 - 이청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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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 23. 00:23 생활의 발견

 평소 먼저 연락 안하던 고등학교 동기로부터 대뜸 먼저 연락이 왔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무엇인가를 부탁(?), 혹은 제의를 하기 위해 연락을 했었던 것이고, 내용인즉슨 인터뷰를 해보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뜬금없이 무슨 인터뷰냐고 물어봤더니 모 청소년 잡지의 인터뷰이며, 이번에 자신이 인터뷰를 했었는데 다음 대상자로 나를 추천(?)해줬다고 했다. 사실 마음 속 한켠 구석에 조용히 잠재해 있던 세속적 명예욕(?)이 잠깐 눈을 떠 일단 자세한 이야기나 들어보자 했더니, 편집기자로부터 자신이 받은 이메일과 기자에게 나를 추천한 이유, 그리고 자신이 받았던 이전호의 인터뷰 기사를 첨부하여 이메일로 보내줬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잡지라길래, 이메일을 확인하기 전까지만 해도 순진한(?) 나는 말그대로 평범한 고등학교 때 생활, 대학생활, 중고등학생에게 추천할만한 책/영화, 이런 신변잡기적인 것들을 다루는 것이려나 했었다. 그러면 해볼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솔직히 말해서 아주 없지도 않았고.

 하지만 이메일을 연 순간, "고등학교 동기인 이 친구가 꾸준히 성적이 올라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여 석사과정이다." 라며 나를 추천했다는 것을 보고 아차 싶었고, '샘플' 인터뷰 기사는 역시나 별볼일 없는 성적이었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내신이 얼만큼 올랐고, 수능 점수가 얼만큼 올랐으며, 또 각 영역별 공부는 이렇게 이렇게 했다,라는 내용이었다. 이 지난호 인터뷰의 대상이 '성공'적으로 수험생활을 마쳤다고 할 수 있을 법한 갓 대학들어간 학생이었으면 그런가보다 했었겠지만, 하필이면 그 대상이 인터뷰 당시 고2였던 학생이었고, (결코 비웃을 생각은 없지만) 그 친구가 소위 자신의 '비법'을 보여주고 있다는 약간은 어이없게 느껴졌다. 결국 두 페이지 분량의 기사는 시쳇말로 '손발이 오그라들어' 1/3도 보지 못한채 바로 연락을 주었다. 고등학교 입학한지 10년이 넘었고, 수능을 치른 것은 10년이 거의 다 되어가는 마당에, 그 사이에 대입에서 수능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어도 다섯번은 넘게 바뀌었을테고, 결정적으로 나를 키운건 4할은 학원이었던 마당에 이런 인터뷰는 못하고, 할 수도 없다고 답을 보냈다.

 이 친구는 수험과 관련된 책들을 냈었다. CEO가 되겠다며 경영대에 입학했던 이 친구가 갑자기 어느 순간에 교육에 관심을 돌리게 됐는지 그 사연을 나는 모른다. 하지만 아무튼 이렇게 방향을 바꾼 이 친구의 책에는 자신의 중고등학교적 경험을 바탕으로 공부할때 필요한 마인드, 일종의 학습 요령 등이 담겨있었다. 이 친구한테는 미안하지만 나는 그 책들을 시중 서점에서는 한번도 보지 못했고, 인터넷 서점에 올라온 서평, 추천사(그것도 지금은 교장선생님이 된 고1때 담임이! 쓰셨단다!), 목차 등을 빼면 이 책에 대해 아는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속단할 수 없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게 과연 잘하는 일인가 싶었다. 물론 공부하는게 큰 틀에서 보면 그다지 바뀔게 없겠지만 싶으면서도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10년이 거의 다 되어가는 사람이 과연 지금 수험생들에게 기술적인 이야기를 해줄수 있을까?에서부터, 과연 이 기술적인 것들만 이야기 하는 것으로 충분할까? 교육에 그렇게 관심이 많다면 이 친구는 그럼 왜 보다 큰 틀에서 교육 문제에 접근하지 못하는 것일까? 본인도 고민은 하지만, 수험서적이라는 출판 시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등등 하는 생각들이 떠올랐다. 사실 이런 생각들을 얘기해주고 싶었지만, 내가 잘나면 얼마나 잘났다고 이런 이야기를 이 친구에게 하겠나, 그리고 정작 수험생들한테는 이 친구의 이야기들이 당장은 더 도움이 될테니 별 수 있나, 하는 생각 때문에 그리하지는 못했다. (사실 보다 '결정'적이고 '기술'적인 문제는 이 이야기를 할 '타이밍'을 놓쳤다는 것이다.)

 이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얼마 전 모 주간지에서 수험생을 다루고 있는 모 드라마에서 주인공급 배우가 "올림픽에서 어느 나라의 누가 메달을 따고, 어느 나라가 몇 위를 했는지는 관심을 갖고 격려를 하면서 왜 학교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을 꺼려하느냐"라는 발언을 했고, 이런 비슷한 발언을 "1등 신문"의 모 주간이 그 전에 이미 했다는 것을 소개(그리고 아마도 또 특정 교사 단체를 언급하며 배후설을 얘기했곘지..) 했던 것이 떠올라 약간 더 우울해졌다. 내가 너무 일반론적인 생각만을 하고 현실적인 사항들을 고려하지 않는걸까, 아님 이네들이 너무 현실적인걸까? 잘 모르겠다.

 p. s : 조금은 다른 이야기. 이보다 얼마전에 친구 세명을 만났다. 편의상 A군, B군, C양이라고 칭하자. A군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모두 같이 나왔고, 심지어 같은 해에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B군은 초중학교와 대학교를 같이 나왔고, C양은 유치원, 초중학교, 대학교를 같이나왔다. 이 친구는 전공이 다르니 큰 의미가 있겠냐만은, 같은 학기에 대학원을 입학했고, B군과는 과동기이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네명은 '적어도' 모두 같은 초중학교와 대학교를 나왔다는 이야기. 아마 C양과 내가 성(姓)이 같았다면 고등학교도 같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네 명 모두 고등학교때까지 같은 동네에 쭉 살았었으니, 있을법한 이야기이다. 초중고등학교야 그렇다 치더라도, 하지만 대학까지 모두 같이 나왔다는게 과연 "있을법한" 이야기일까? 적어도 이 세 친구들은 똑똑한 친구들이고, 약간의 운이 좋았던 나까지 포함해서  "이것은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초중학교와 대학교까지 같이 나온 친구는 우리 넷이 전부가 아니다. 내가 아는 사람만해도 두세명은 더 된다. 물론 개개인의 실력이 1차적인 원인이겠지만, 그것을 뒷받쳐주는 것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그게 그 동네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동네는 모 시사 주간지에서 "부유한 사람들이 더 열심히 투표를 한다"며 그 사례로 꼽은 서울시에서 가장 투표율이 높은 곳이라는 사실이 떠오르면서 또 우울해졌는데....어째 이래저래 괜시리 우울해지기만 하는 나날이다.
posted by Gruenta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