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사랑을 위하여 여러분들은 우리와 함께 같은 대의를 만들었고 그리스도의 봉사의 전쟁 안에서 같은 위험을 감수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이탈리아 입성에서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일의 과정에 대한 이 확실한 이야기를 당신들에게 보내어 특별한 주의를 주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우리에게 보낸 사절들과 함께 만들어진 타협안에 따라 여러분들의 지도자들 중 몇 명이 우리를 관문에서 만나게 되는 날의 약 20일 전에 우리는 롬바르디아로 와서 그 지역을 통과할 수 있도록 그들의 도착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우리가 불안한 시기들 때문에 - 실로 우리가 꽤 믿고 있는 대로 - 우리에게 보낼 수 있는 수행원이 없으며 여러분들에게 다가갈 다른 방법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우리는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경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적지 않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 사이에 우리는 국왕이 우리에게 오고 있다는 확실한 소식을 받았습니다. 그가 이탈리아에 도착하기 전에 그는 자신이 우리에게 사면과 사도의 축복을 얻을 수만 있다면 우리에게 그가 하나님과 성 베드로께 사죄를 드릴 것이고 삶의 그의 방식을 개선할 것과 우리에게 순종하는 것을 계속하기를 제안하는 말을 전했습니다. 오랫동안 우리는 답을 늦췄고 사절들을 통해 마지막까지 그 스스로의 협약에 대한 도리에 어긋난 행동에 때문에 그를 여러모로 몹시 비난하며 오랜 협의를 하였고, 적개심이나 반항의 어떠한 기색 없이, 그는 우리가 머물고 있었던 카노사의 요새로 몇몇의 수행원들과 함께 왔습니다. 그곳에서, 3일 동안, 성문 앞에 서있으면서, 곁에 모든 국왕의 기장을 두고, 맨발과 조악한 차림새로, 그는 사도의 도움과 위로를 참석해있던 모든 사람들과 이 이야기를 들은 모든 사람들이 그의 동기를 청원자들과 눈물들로 탄원하는 동정과 연민으로 마음을 움직일 때까지 많은 눈물로 간청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우리의 이례적인 엄격함에 놀랐고, 몇몇 사람들은 심지어 우리가 교황의 권위의 진지함이 아니라, 오히려 미개한 폭군의 잔인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외치기까지 했습니다.
Gregory, "33. Letter of Gregory to the German princes giving an account of the incident at Canossa (Jaunary 1077)", trans. E. Emerton, Correspondence, pp. 111-12, Brian Tierney, The Crisis of Church and State 1050-1300, Toronto, 1988, pp. 6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