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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발길을 멈추고 주저앉고 말면 우리 삶은 거기서 끝나게 됨이라 - 이청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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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21. 07:12 기억의 습작

민주주의는 사람들에 의한 그리고 사람들을 위한 정치 체제다. 물론 이와 같은 설명이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데 시작점이 될 수는 있겠지만, 민주주의의 정의는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민주주의일까? 앞으로 이 책에서 다룰 일곱 가지의 이념들을 이행하고 실현시키려는 정치 체제가 바로 민주주의다. 그 일곱 가지 이념들이란, 참주정으로부터의 자유, 조화, 법에 따른 통치, 본성에 따른 자연적 평등성, 시민 지혜, 지식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추론, 그리고 일반 교양 교육이다. 민주주의의 성립을 위한 덕목으로 이 이념들 외에 정의와 경의를 추가할 수 있다. (41-42)


(참주정의 장점을 옹호하는) 투키디데스가 제시하는 입장은 참주정이 꼭 나쁘지만은 않은 체제라고 혼동하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입장을 단호히 거부해야만 한다. 참주정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테네인들은 체포되거나 도편 추방된 자들을 대신할 새 정치 지도자들을 다시 뽑아야 했으며, 그로 인해 아테네의 정치 체제가 다소 비능률적으로 흘러간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그러나 능률적인 정치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참주정을 지지한다는 식의 주장은 위험하다. 이런 잘못된 믿음 때문에 우리들은 또 다른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할지도 모른다. 때로는 비능률적인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정치적으로 무지한 상태에서는 종종 무능력한 지도자들이 안전장치를 남겨놓기도 하며, 이로 인해 잘못된 사안들이 정책으로 확정되는 과정을 늦출 수도 있기 떄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대중 연설가들이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처럼, 정치적 지도력에 대한 불신은 민주주의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방어장치인 것이다.

 개별 참주들을 옹호하는 것은 마치 날씨를 변호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며칠 사이 좋은 날씨가 이어지다고 해서 매일같이 날씨가 좋을 것이라고 믿지 않느다. (...) 하지만 날씨를 통제할 방법이 없는 것처럼 아테네인들은 그들을 통제할 어떠한 수단도 갖지 못했다. 참주들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해줄 수도 있으나, 차차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을 추구하려 들 것이다. 그리고 결국 무엇으로도 그들을 막을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아테네인들이 참주정에 대해 가졌던 판단을 믿어야 한다. 그들은 두 세대에 걸친 참주 통치 이후 참주정에 대해 공포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었다. (131-132)


 거짓말은 논쟁의 결과가 아니다. 거짓말을 하는 자들은 보통 논쟁이 벌어지는 걸 원치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논쟁을 두려워한다. 전문적 지식의 권위를 등에 업은 자들은 논쟁이 벌어지는 걸 막기 위해 자신들에게 첩자나 정보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거짓말을 하곤 한다. 그들은 열린 논의의 가능성을 처음부터 배제하려는 것이다. 권위는 확실성을 확보된 경우 획득되며, 권위에 호소하기 위해 우리는 전문가들을 믿어야 한다. 하지만 소위 전문가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사람들로부터 진실을 감추며 논쟁을 원천 봉쇄하려는 경우, 우리는 그들이 진정으로 전문가인지 혹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따져 봐야 한다.

 정치에서 거짓말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겆ㅅ말은 수사술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고지식함이나 권위를 쉽사리 믿어버리는 대중의 경향으로 인해 비난받아야 한다. 우리는 단순히 거짓말을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열린 논의를 위한 운동을 전개하여 거짓말에 맞서야 한다. 정부의 보조 지원금이 주로 생필품 시장에서 쓰여지듯, 거짓말은 주로 이념의 시장에서 작동한다. 이 같은 거짓말이 합리적 토대 위에서 선택하려는 우리의 능력을 붕괴시키고자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312) 


posted by Gruenta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