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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발길을 멈추고 주저앉고 말면 우리 삶은 거기서 끝나게 됨이라 - 이청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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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3. 29. 08:14 기억의 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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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경과 정인홍, 그들이 북인이라는 것, 소북, 대북이라는 사실은 어느 순간에는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을지라도 한번 선택한 뒤에는 바꾸기 어려운 객관적 조건이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또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많은 경우, 공존과 연대의 붕괴는 어쩔 수 없는 조건에서라기보다 잘못된 선택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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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의 역할은 지속시키는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을 지속시킬 수 있고, 가장 나쁜 것을 지속시킬 수도 있다. 지속이 좋은지 나쁜지는 그 제도가 처한 역사적 타이밍에 의해 결정된다. 경연은 군주 혼자 판단을 내릴 때 초래될지 모르는 자의성의 위험을 피하고, 현안이나 정책을 근원적인 비전 속에서 조망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적 장치였다. 그래서 하루 세 번, 몇 시간 이상 함께 논의하고 검토하는 장치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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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도 못 살면서 1천 년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고 또 그래야 역사의식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역사는 시공의 유한성을 넘어서는 인간의 자기 이해라고 생각하며 그러한 이유 때문에 역사의식에는 종교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유한성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역사는 각기 다른 의미를 띠고 다가올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조선 사람들은 자신의 삶은 자신과 함께 살았던 사람들, 그리고 후세 사람들이 평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업보도 아니고, 천당, 지옥도 아니다. 이 유가의 현실주의가 그들을 사로잡았고, 그래서 역사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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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경우는 어떤 죽음에 해당될까? 나는 둘 다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자연사할 만큼 나이가 먹은 상태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격이랄까? 새로운 문명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서 일본제국주의의 침탈을 당한 것이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은 망국의 실제를 이해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조선의 망국을 이해하는 우리의 관념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일단 이 경우에 생겨나는 안타까움은 두 가지 방향으로 작동한다. 하나는 안으로, 하나는 밖으로, 먼저 밖으로. 일본의 침략, 나아가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비판이다. 하긴 이 선명한 비판조차도 근대화라는 망상에 빠져 호도하는 모양이다. 제국주의 침략의 부당성을 오히려 부정하고 근대화 논리에 휘둘려서 오히려 식민지의 긍정성을 부각하는 주장이 있다. 물론 통계와 실증이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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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는 '빨리 망했으면', 그래서 '강대한 새 나라가 있었으면'하는 관념을 형성한다. 좀 더 빨리 망해서 사회나 나라가 바뀌고 왕조든 뭐든 정체의 전환이 이루어졌다면 식민지로 전락하는 욕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움, 애처로움의 표현이다.


그런데 이 '빨리 망했으면' 관념은 하나의 가정이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는 말은 역사가 가정이 낳을 허구에 기초하지 않고 사실에 기초해서 논의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빨리 망했으면'이라는 가정은 이미 역사학의 궤도를 이탈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어디로? 역사가 임의적일 수 있다는 데로! 거듭 말하지만, 역사에 우연은 있어도 임의성은 없다. 


조선은 망할 때가 되어 망한 것이고, 하필 그때 우연히 사고를 당한 것이다. 어떤 노인이 나이가 들고 건강이 나빠져 돌아가실 떄가 되었는데, 불행히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치자. 우리는 그때 운이 나빴다고만 말하기가 어렵다. 특히 그 망하는 당사자가 되었을 떄는 그 가정에 온갖 사념이 개입한다.


아쉬움이 원망으로, 원망이 바람으로, 바람이 다시 원망을 낳고, 원망은 다시 아쉬움으로 돌아온다. 이 사이클은 당사자의 논리로만 전개되지 않는다. 거기에 슬쩍 제국주의의 선전히 흘러 들어온다. 식민지의 곤혹은 이미 불리한 지형에 서 있는 그 자체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빨리 망했으면' 관념 자체가 이미 심각한 상처의 소산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관념은 이미 식민사관으로 범벅이 될 운명을 타고났다. 그래서 나는 '빨리 망했으면' 관념이 보이는 모든 글을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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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그때 그랬을까? 조선 사회와 인민들은 광해군 15년 동안의 시간을 '잃어버렸다'. 민생회복, 사회통합, 재정확보, 군비확충, 문화발전 등 어느 하나 제대로 이룬 것이 없이 오히려 그 반대로 흘러갔다.그 15년을 잃지 않았다면, 동아시아 판도는 달라졌을 것이다. 중원의 판도까지 좌우할 수는 없더라도 동아시아 외교에서 발휘할 수 있는 주체적 운신의 폭은 넓었을 것이다.


조선 사람들이 임진왜란의 경험을 허투루 버려두지도 않았을 것이며, 사회 안정과 생산력 제고는 자강의 질과 수준을 높였을 것이다. 사림의 헌신적인 리더십과 인민들의 발랄한 생활력이 만나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문화를 아름답게 꽃피웠을 것이다.


광해군 때 잃어버린 15년의 나라 꼴을 회복하는 데, 침략 전쟁 두번을 포함하여 인조, 효종 연간 30년 이상이 걸렸다.


인조반정 이후 사람들은 다시 삶을 시작하고 있었다. 반정은 그들이 선택한 행위이기도 했지만,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그러므로 선택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었든 그들은 다시 농사를 지어야 했고, 바닥 난 재정을 긁어모아 나라를 운영해야 했으며, 후세를 낳고 기르고 가르쳐야 했다.


무너진 사회의 기강을 세워 그래도 좀 더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야 했으며,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어야 했다. 그러다가 미처 여력이 없던 차에 닥친 침략에 허둥대기도 하고 답답하여 죽고 싶기도 했다가, 다시 일어서 하루하루 이 땅에서의 삶을 이어갔을 것이다. 지금, 우리처럼.



posted by Gruenta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