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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발길을 멈추고 주저앉고 말면 우리 삶은 거기서 끝나게 됨이라 - 이청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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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 17. 01:32 생활의 발견

  새해를 맞아 한 해의 목표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지나간 해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늘 연말연시에 막연하게나마 새해의 다짐은 해도 지나간 해에 대해서 크게 생각해보았던 적은 것 같다.


 지난 해의 초 나는 블로그에 “올해에는 조금은 더 부지런해지고 조금은 더 부끄러워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감스럽게도 이 다짐에 충실하지 못했던 것 같다. 논문만 해도 여름 방학동안 주제를 잡고 2학기에 서론을 마련해서, 이번 1학기에 발표한다는 것이 계획이었다. 하지만 태만한 탓에 계획을 이루지 못하였다. 여전히 주제를 잡는 것에 고민하고 있고, 스스로가 논문 진척 과정에 만족하지 못해 마음 편히 잠든 적이 거의 없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부지런히 살지 못했음을 반성해야 할 이유가 있으리라.


 부끄러워할 줄 알자는 것은 내가 ‘지금, 여기(hic et nunc)’에 안주하고 만족하지 말자는 경계심에서 삼은 좌우명이었다. 하지만 부지런하지 못했기에 나는 늘 부끄러워하며 잠들었으니, 한해의 목표를 달성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자부하기는 부끄럽다. 부끄러워하기만 하고, 그 이상의 노력은 항상 내일로 미루다 한해를 다 보내버리고 말았으니까. 이렇게 되니 왠지 부끄러워할 자격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지난해가 마냥 실패한 해만은 아니었다. 나는 다시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었고, 다시 체중을 줄였고, 우연찮게 다시 해외를 다녀올 수 있었으며, 학교 안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정도면 총론에선 만족스러울지 못해도 각론에서는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한 해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올해는? 물론 올해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더욱 부지런해지고 더욱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리라.


1. 진로에 대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진지하게 열어둘 것.

2. 논문은 반드시 2학기에 마무리할 것. 공부를 계속하면 그 출발점이자 연속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더라도 논문은 그 마무리이기 때문에.

3. 쓰기보다 읽기에, 읽기보다 생각하기에.

4. 하지만 그렇다고 읽기와 쓰기를 게을리 하지 말 것.

5. 사소한 일이라도 먼 앞날을 헤아리고 인생의 깊은 뜻을 생각해서 말하고 행할 일.

6. 따라서 말하기 전에 반드시 생각하고 말할 것.

7. 친한 사람이라 하여 함부로 대하지 말 것.

8. 공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 것.



 세 번째 다섯 번째는 광복 전후에 활동한 사학자 김성칠이 ‘새해의 맹세’로 1950년 1월 1일 일기에 남긴 것 중의 일부이다. 물론 취하지 않은 것도 마땅히 따라야 할 일이겠지만, 큰 맥락에서 조금은 벗어나거나 중복되는 것 같아 그대로 전부를 옮기지 않기로 하였다.


 어느덧 새해 첫 달도 절반이 지나 이제 새해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아직 마음은 그렇지 않다. 새해의 다짐도 예전 같았으면 어설프게나마 들뜬 마음에 진작 정했을 터이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정한 느낌이다. 지나간 해가 썩 만족스럽지 못한 미련 때문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지난 일을 제 때 매듭짓지 못하고 지금을 외면한다면 똑같은 후회를 올해 말에 다시 할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기 위해 항상 경계하고, 또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posted by Gruenta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