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아르님]는 심각한데 그것도 마치 죽은 독일인처럼 심각하다. 살아 있는 독일인도 심각한데 그것도 마치 죽은 독일인처럼 심각하다. 살아 있는 독일인도 이미 상당히 심각한 종족이다. 그런데 죽은 독일인이라면 어떻겠는가! 프랑스 사람은 우리가 죽어서는 정말 얼마나 심각해질지 상상조차 못할 것이다. 죽으면 우리 얼굴은 훨씬 더 길어져서 우리를 파먹는 벌레들도 식사 중에 우리를 쳐다보면 우울해질 정도다.
- 하인리히 하이네, 낭만파, 한길사.
너님들도 알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알고 있지만 고치질 못하니 불행이라고 해야할지는 모르겠다.
'기억의 습작'에 해당되는 글 34건
- 2010.08.11 하이네, 낭만파
- 2010.05.24 설검說劍, <잡편>, 장자5
- 2010.05.17 (지방선거를 위해(?)) 오합忤合 - 형세를 살피고 기세를 탄다4
- 2010.05.15 MBTI 검사2
- 2010.05.10 3년이 지났구나.
- 2010.05.02 황동규, 봄날에
- 2010.04.13 발터 벤야민, 글을 잘 쓴다는 것
- 2010.03.06 이윤림, 빨래2
- 2010.03.06 이윤림, 水簾之室
- 2010.03.05 에밀레종 트위터2
조나라의 문왕은 칼싸움을 어지간히도 좋아했다. 그래서 검을 다루는 식객만 3,000명이 모여들었다. 종일 임금 앞에서 칼싸움을 벌이니 사흘이 멀다 하고 사람이 자빠져 나갔는데, 이렇게 3년 정도가 지나자 나라가 약해졌다. 태자가 걱정이 되어 이렇게 영을 내린다.
"누구든 임금을 설득해서 검객을 기르는 일을 멈추게 하면 천금을 상으로 내릴 것이다."
그러자 한 사람이 장자를 추천한다. 장자는 당시에 현인으로 이름이 높았다. 장자는 태자의 말을 듣고는 일단 천금을 논외로 놓고 임금을 설득해보겠노라고 약속을 한다.
사흘이 걸려 검복이 갖추어지자 장자는 드디어 태자와 함께 임금을 만나러 갔다. 물론 장자는 검술의 달인이 아니었다. 알다시피 장자는 왕이나 대부를 마음으로 존경하는 사람은 아니다. 어전에서도 잡다한 예는 생략하고 인사도 없이 왕 앞에 나간다.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자.
"어떻게 과인을 가르치려고 하오?"
"왕께서 검을 좋아하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검으로 왕을 뵐까 합니다."
검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왕은 귀가 번쩍 뜨였다.
"선생의 검은 어떻게 상대를 제압할 수 있고?"
장자는 일단 큰 소리를 친다.
"제 검은 열 걸음에 한 사람씩 베는데, 천 리를 가도 제지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왕이 크게 기뻐하면서 말한다.
"천하무적이로고."
이제 장자가 검에 대해 한마디를 한다.
"대저 검술이라는 것은 허점을 보여주어 유인하고, 늦게 뽑아도 먼저 찌르는 것입니다. 한번 시연하고 싶습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니까 왕은 이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실제로 자기의 검사들이 이 '천하무적'의 검사에게 모두 당한다면 체면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자에게 말한다.
"우선 쉬면서 명을 기다리시오. 시합장을 준비한 뒤에 선생을 부르겠소."
이렇게 말하고는 자신이 데리고 있는 검사들을 시합시켜서 7일동안 60명의 사상자를 낸 끝에 여섯 명을 추려냈다. 그러고는 장자를 불렀다.
"자, 오늘 검을 시연해주시지요."
"오랫동안 기다린 바입니다."
"선생의 검은 길이가 얼마나 되오?"
"길이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세 개의 검을 가지고 있는데 오직 왕께서만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먼저 들으신 후에 시험하게 해주십시오."
"말씀해보시구려."
"천자의 검과 제후의 검, 그리고 서민의 검 세 가지 입니다."
"천자의 검은 어떤 것이오?"
"천자의 검은 연나라의 계곡과 석성을 칼끝으로 하고, 제나라의 태산으로 그 날을 삼는데, 사방의 오랑캐들을 포용하고, 사계절로 감쌌습니다. 이 검은 오행을 다스리고, 형벌과 덕을 논하며, 위로는 구름을 결단 내고, 아래로는 지기를 끊습니다. 이 검을 한 번 쓰면 제후들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천하가 복종하게 됩니다."
문왕은 그 거침없는 말을 듣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래서 제후의 칼은 무엇인지 묻는다.
"제후의 칼은 용기 있는 자로 칼끝을 삼고, 청렴한 사람으로 칼날을 삼아서, 위로는 둥근 하늘을 본받아 해와 달과 별의 세 가지 빛에 순응하고, 아래로는 모가 난 땅을 본받아 사계절에 순응하고, 가운데로는 백성들의 뜻에 부합하여 사방을 편안하게 합니다. 이 칼을 쓰면 나라 안에 그 명령을 어기는 자가 한 명도 없습니다."
이제 문왕은 점점 수치를 느낀다.
"서민의 칼을 말해보오."
"서민의 칼은 봉두난발에 귀밑머리가 관(모자) 밖으로 나오고, 눈을 부릅뜨고 면전에서 서로 치고 받는데, 위로는 목을 베고, 아래로는 간과 폐를 찌릅니다. 이것은 닭싸움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일단 목숨을 잃고 나면 이미 나랏일에 쓸 수가 없게 되지요. 지금 대왕께서는 천자와 같은 지위에 있으면서 오히려 서민의 칼을 좋아하시니, 제가 감히 말씀드리오니 그 일은 경박한 행동이라 여깁니다."
이러자 문왕은 크게 깨달아 장자에게 술을 올린다. 그러자 장자는 말한다.
"대왕께서는 좌정하시고 심기를 바르게 하십시오. 검에 관한 말씀은 다 드렸습니다."
그로부터 석 달 동안 문왕은 궁전을 나가지 않았고 검객들은 모두 자결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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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운영 방침과 같은 큰 결단은 명분과 실재를 함께 추구해야 하는데, 명분을 잃으면 실재까지 잃는다. 조나라 문왕은 한 나라의 수장으로서 명분을 잃었다. 문왕의 뛰어난 검객들은 문왕이 명분을 잃은 것이 밝혀지자 모두 자결하고 만다. 문왕의 잘못된 결정이 결국 아까운 생명들만 죽인 것이다.
최고결정권자의 결단은 객관적인 관찰에 명분이 더해져야 하고, 거기다가 반드시 할 수 있는 것을 하되 아래 사람들을 희생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결단은 한번 내리면 주워 담지 못한다. (...) 결단하는 일은 그래서 항상 긴장감이 있어야 한다. 긴장감이 없어지면 힘이 흩어진다. (...) 천자의 검, 제후의 검을 쓰는 것이 쉽지 않듯이 오늘날의 중요한 결단도 마찬가지다. 최고결정권자는 천자의 검을 쓰듯이 신중하게 명분과 책임에 근거해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박찬철, 공원국, 『귀곡자: 귀신 같은 고수의 승리 비결』, 위즈덤하우스, 2008, pp. 266-269.
.... 근데 우리의 가카는?
『귀곡자』를 읽다 요즘 지방선거와 관련해서 읽을만한 구절이 있길래 옮겨적어본다. 사실 거칠게 말해서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책이니, 굳이 이 장만 지방선거와 관련된 것은 아니다.
5. 오합忤合 - 형세를 살피고 기세를 탄다
추세를 따라 합치고 등을 돌리는 것에도 모두 적합한 계책이 있다. 일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 사슬이 서로 방향을 바꾸며 엮여 있는 것처럼 서로 맞물려 돌아가니 모두 일의 상황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 그래서 성인이 세상에 나와 몸을 세우고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하며 이름을 드높이는 이유는, 반드시 사물이 많이 모이는 것을 살펴서 천시가 적합한지 보고, 천시의 적합함을 근거로 일을 안 뒤에 그에 따라 자신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항상 귀한 것도, 항상 배울 수 있는 스승도 없다. 그럼에도 성인이 못 하는 것이 없고, 못 듣는 것이 없어서, 일을 이루고 계책을 성공시키는 것은, 천시를 따라서 함께 주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계략이 이쪽에 합당하나 상대에게 합당하지 않으면 반드시 배반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
오합의 방법을 천하에 쓸 때는 반드시 천하의 형세를 계량하여 이와 함께해야 하고, 나라에 적용할 때는 반드시 그 나라의 역량을 계량하여야 하며, 가정에 쓸 때는 가정의 역량을 계량하여야 하고, 자신에게 적용할 때는 스스로의 능력과 기세를 잘 재어본 후에 써야 한다. 크고 작음과 나아감과 물러섬에 그 방법은 모두 같으니, 반드시 먼저 깊이 생각한 후에 비겸의 술을 이용하여 실행한다.
옛날에 대세를 잘 읽어 방향을 잘 잡는 사람은 우선 온 세상과 협력하고, 제후들을 끌어안고, 등을 돌리고 합칠 곳의 형세에 따라 상대의 변화를 시도한 후, 그런 연후에 합쳤다. 그러니 이윤이 탕왕에게 다섯 번 나가고 걸왕에게 다섯 번 나간 후 탕왕을 섬기고, 여상(강태공)이 문왕에게 세 번 나가고 은나라를 세 번 들어간 후에 은나라를 밝게 할 수 없음을 알고, 연후에 주 문왕을 섬겼는데, 이는 천명이 명확히 정해준 것을 알고 한 것이니, 상대와 합침에 추호의 의심도 없었던 것이다.
성인의 수준에 도달하지 않으면 세상을 다스릴 수 없고, 각고로 노심초사하지 않으면 일의 근본을 알 수가 없고, 상대의 본심을 전력해서 살피지 못하면 이름을 이룰 수 없으며, 나의 자질이 지혜롭지 않으면 군대를 쓸 수가 없고, 진정으로 충실하지 못하면 상대방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오합의 도는 반드시 자신의 재능과 지예를 먼저 알고, 누가 나보다 능력이 못한지 알아야 한다. 이런 후에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있으며, 종으로 갈 수도 있고 횡으로 갈 수도 있는 것이다.
박찬철, 공원국, 『귀곡자』, (주)위즈덤하우스, 2008, pp. 137-138.
가카TI 검사를 무심결에 다시 해봤다. ISFJ가 나왔는데, 지금껏 나와본 적이 없는 유형이 나온 것 같다. 1년에 두세번씩은 심심풀이로 해보는데, 그 때마다 조금씩 바뀌는 것 같다. I-F는 그래도 안바뀌었던 것 같기도 하고. 사실 나는 이렇게 한 다음에 블로그나 미니홈피 등등에 적어둔다. 그러고 못찾는다. -_-; 그래서 다시 해본다. 그러면 결과가 기억하는 것과 조금 다르게 나온다. 그래서 "이상한데?" 하면서 적어둔다. 또 못찾는다.의 반복..... 그래도 티스토리에 올려두면 이제 쉽게 찾겠지. (예전엔 ISFJ-INFP가 나왔었던걸로 기억한다. S/N - J/P적 성향이 나는 모호하게 뒤섞인듯.)
ISFP를 읽어보니,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나의 가장 이상적일 때? 혹은 가장 나답다,고 할 수 있을 때의 모습인것 같기도 하다. 사실 요즘 좀 성인군자처럼 살아야 거친 세상에서 살아 남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한 마음도 없지 않다.
▩ ISFP 성인군자형 ▩
말없이 다정하고 온화하며 친절하고 연기력이 뛰어나며 겸손하다.말없이 다정하고, 양털 안감을 놓은 오버코트처럼 속마음이 따뜻하고 친절하다. 그러나 상대방을 잘 알게 될 때까지 이 따뜻함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동정적이며 자기 능력에 대해서 모든 성격 유형 중에서 가장 겸손하고 적응력과 관용성이 많다. 자신의 의견이나 가치를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으며 반대의견이나 충돌을 피하고, 인화를 중시한다. 인간과 관계되는 일을 할 때 자신과 타인의 감정에 지나치게 민감하고, 결정력과 추진력이 필요할 때가 많을 것이다. 일상활동에 있어서 관용적, 개방적, 융통성, 적응력이 있다.
▒ 일반적인 특성 ▒
▒ 개발해야할 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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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걸어 놓은 노래를 듣고 있어. snow patrol에서 oasis를 지나 장필순으로 끝나는 여섯 곡. 이 노래는 네게 어떻게 스며들었을까. 아마 나는 절대 알 수 없겠지. 너의 느낌에 대해 생각하면 아득해지듯 지금은 내 마음도 희미해. 왜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여자 아이에 대해 말하려는 걸까. 무엇보다 이런 글을 써도 되는 걸까? 하지만 모든 설명은 아무리 해도 불충분할 게 틀림없으니 다만 이렇게 말해두자. 아마 바람 같은 걸 거라고. 아득한 너의 느낌이 선연해지길, 희미한 나의 마음이 투명해지길, 또 누군가 이 상황을 알아채 주길 바라는.
너는 아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86년 5월 21일, 그 여자아이가 스물두 살이었을 때의 일이야. “숱한 언어들 속에 나의 보잘것없는 한마디가 보태진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니. 그러나 다른 숱한 언어가 그 각각의 인간의 것이듯 나의 언어는 나의 것으로 나는 나의 언어로 말할 수 있겠지.” 또, “**아, 뭘 할 수 있겠니, 내가. 지긋지긋하게 싫더라도 어쩔 수 없음을 네가 모르지 않을진대 요구하지 마, 요구하지 마! 강요하지 말 것. 구체적인 것이다, 산다는 건.”
자신의 언어가 지니는 힘과 구체적일 수밖에 없는 삶의 속성을 이렇게 정확한 문장으로 쓰면서 어떻게 죽음을 결심했을까? 유서와 투신 사이가 너무 멀어 투신이 꼭 유서의 일부로 보여. ‘요구하지 마’ 뒤에 찍힌 것처럼 그렇게 전체가 선명한 느낌표 같아. 실은 네게 우리의 거짓말에 대해 말하고 싶었지. 마치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듯 삶을 향한 에너지를 뿜는 느낌표가 아니라 어떻게든 이어가는 데에만 급급했던 쉼표 말이야. 그건 이런 거지. 하나,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우리는 스스로를 쉽게 용서했고) 둘, 세상 같은 건 더러워서 피하는 거지.(우리는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했으며) 셋, 진짜 하고 싶은 말은 하지 않는 편이 낫지.(우리는 더 이상 서로를 믿지 않기로 했지) 이렇게라도 변명을 하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순간이 있었음을 왜 잊었겠니. 하지만 언젠가부터 쉼표가 삶을 채우면서 사는 게 수월해지고 급기야 하찮아지기까지 했음을 고백해야겠다. 아니 하찮아진 건 바로 우리 자신이겠지.
처음 유서를 읽었을 때로 돌아가. 그리고 다시 유서를 읽어. 07년 5월 8일, 네가 스물여섯이었을 때의 일이야.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어 행복하다며 왜 죽었을까? 의지로 안 되는 일이 있어 어쩔 수 없다고 할 때 그 어쩔 수 없음이란 여자 아이가 말한 것과 같은 의미일까? 다음 생에서 꼭 이루고 싶다던 그 일은 내가 짐작하는 그 일이 맞을까? 그때 나는 삶이 무서워져서 ‘왜’라는 단어를 꾹 삼켰어. 깊은 곳에 가라앉아 여간해서는 떠오르지 않도록. 살아있으니 그냥 살아가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제는 읽을수록 여자 아이의 ‘요구하지 마’와 그 뒤에 찍힌 느낌표, 너의 ‘다음 생’과 ‘꼭’이라는 말이 몹시 뜨겁네. 미지근함이 누군가의 더운 피까지 식힌 건 아닐까. 사람과 세상에 정답을 가진 것처럼 굴던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죽여 온 걸까. 언젠가 니체의 운명애(amor fati) 밑에다 “이것이 생이란 말인가, 이제 그만!” 이라 적었지. 허무주의자가 되는 게 삶에 대한 마땅한 태도라고 생각했던 거야. 그렇다고 이제 네게 “이것이 생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다시 한 번!”하며 니체 풍의 삶의 찬가를 불러줄 순 없지만 무턱대고 쉼표 찍는 일만은 멈출 수 있을 것 같네.
연구실 창가에 서면 여자 아이의 추모비가 보여. ‘박혜정 열사 추모비’. 아방궁 곁이야. 노래는 몇 번 반복되었을까. 종일 문장을 지워도 네 느낌과 내 마음과 이 상황은 희미하기만 하고 바람만이 커져가. 편지인 척하는 글은 여기서 줄여야지.
황예인, 박혜정 열사 추모비 아래서 두 벌의 유서를 읽다, 대학신문, 1784호, 2010년 5월 10일.
이제 너와 헤어지는 건
강물이 풀림과 같지 않으랴
어두운 한겨울의 눈이 그치고
봄날에 이월달에 물이 솟을 제
너와 나 사이의 언짢음도 즐거움도
이제 서로 반짝이리 봄 강물같이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훌륭한 작가는 그가 생각하는 것 이상은 더 말하지 않는다. 말한다는 것은 이를테면 표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동시에 사고의 실현을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걷는다는 것도 어떤 목적에 도달하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욕구의 실현인 것이다. 그러나 그 실현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지는 - 그것이 목적에 맞추어 정확하게 이루어지든 아니면 마음내키는 대로 부정확하게 이루어져 소기의 목적에서 벗어나든 - 길을 가는 사람의 평소 훈련이 어떠한가에 달려있다. 그가 자제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또 불필요하게 샛길로 어슬렁거리는 움직임을 피하면 피할수록 그의 행동 하나하나는 충분히 제 구실을 하게 되고 또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목적에 더 부합하게 되는 것이다.
나쁜 작가에게는 많은 생각이 떠오르는 법이다. 그는 이러한 많은 아이디어 속에서 마치 훈련을 받지 못한 조악한 주자가 스윙이 큰 암팡지지 않은 육신의 동작 속에서 허우적대듯 자기 자신의 정력을 탕진해 버린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그가 생각하는 바를 한번도 냉철하게 얘기할 수가 없는 것이다. 훌륭한 작가의 재능이란, 그의 사고에 정신적으로 철저하게 훈련된 어떤 육체가 제공하는 연기와 그 연기의 스타일을 부여하는 일이다. 그는 그가 생각해던 것 이상을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따라서 글을 쓰는 행위는 그 자신에게가 아니라 다만 그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에만 도움을 주게 되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 글을 잘 쓴다는 것, 발터벤야민의 문예이론, 민음사, 1983.
빨래3
정신이 얼얼하게
아니 온몸이 얼얼하게
누군가 나를 물 속에 처넣고
빡빡 비벼댔으면 좋겠다
옛날식으로 나무 방망이로 퍽퍽
두들겨 준다면 더욱 좋겠다
혼, 비, 백, 산
알량한 자의식일랑 거품으로 터져버리고
주장할 색깔도, 모양도
형편없이 무너져내리고 싶다
땟국물 한 방울 남지 않게
단단히 비틀어 짜다오
정신이 번쩍 나게
맑은 물에 여러번 헹궈다오
솔기 속에 숨은
실오라기 하나 남지 않도록
탈탈 털어다오
물먹어 무거워진 몸
빨랫줄에 널브러지면
아무 생각 없이 두 팔을 축 늘어뜨리고
비바람에 몸을 맡기겠다
햇볕을 잔뜩 포식해
햇살이 구운 바삭한 과자같이 되겠다
무수한 잔금들 위에
시원한 물이 뿜어지고
뜨겁게 달구어진 육중한 쇳덩이가
주름을 펴주면
그렇게 뼛속까지 개운한 단련도 없으리라
깃을 단정히 여미고
두 팔을 개켜 반듯이 접은 몸 위에 모아다오
다시 또 걸어나가
먼지 속에 엎어질 몸이지만
빈틈없이 나 자신에 쪼개어져
정화된 이 순간을
온전히 누리게 해다오
이 보송한 고요를 방해하지 말아다오
이윤림, 생일, 문학동네, 2000
水簾之室
내가 사랑하는 이 방에
비가 오면 물구슬발 드리워지니
한번 방문해주게
그때가 가장 아름답다네
그때를 가장 좋아했다네
와서 내가 없더라도
구태여 찾지 말게
추억 같은 걸 서랍에서 뒤지지도 말게
내가 사랑하던 방이니
그대의 마음에도 들었으면 하네
그뿐이네
아무것도 찾지 말고, 하지 말고
물구슬발 부딪치는 소리가 어떻게 나나
조용히 귀기울이다 가게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쉬다 가게
이윤림, 생일, 문학동네, 2000
실은 아이폰 화면 캡쳐하는 것도 해보고 아이폰으로 블로그질도 시험삼아서 해볼겸 올리는거다. 오오 아이폰느님 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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