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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발길을 멈추고 주저앉고 말면 우리 삶은 거기서 끝나게 됨이라 - 이청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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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3. 29. 08:14 기억의 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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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경과 정인홍, 그들이 북인이라는 것, 소북, 대북이라는 사실은 어느 순간에는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을지라도 한번 선택한 뒤에는 바꾸기 어려운 객관적 조건이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또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많은 경우, 공존과 연대의 붕괴는 어쩔 수 없는 조건에서라기보다 잘못된 선택에서 비롯된다.


188

제도의 역할은 지속시키는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을 지속시킬 수 있고, 가장 나쁜 것을 지속시킬 수도 있다. 지속이 좋은지 나쁜지는 그 제도가 처한 역사적 타이밍에 의해 결정된다. 경연은 군주 혼자 판단을 내릴 때 초래될지 모르는 자의성의 위험을 피하고, 현안이나 정책을 근원적인 비전 속에서 조망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적 장치였다. 그래서 하루 세 번, 몇 시간 이상 함께 논의하고 검토하는 장치를 받아들였다.


220

100년도 못 살면서 1천 년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고 또 그래야 역사의식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역사는 시공의 유한성을 넘어서는 인간의 자기 이해라고 생각하며 그러한 이유 때문에 역사의식에는 종교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유한성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역사는 각기 다른 의미를 띠고 다가올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조선 사람들은 자신의 삶은 자신과 함께 살았던 사람들, 그리고 후세 사람들이 평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업보도 아니고, 천당, 지옥도 아니다. 이 유가의 현실주의가 그들을 사로잡았고, 그래서 역사를 남겼다.


359

조선의 경우는 어떤 죽음에 해당될까? 나는 둘 다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자연사할 만큼 나이가 먹은 상태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격이랄까? 새로운 문명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서 일본제국주의의 침탈을 당한 것이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은 망국의 실제를 이해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조선의 망국을 이해하는 우리의 관념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일단 이 경우에 생겨나는 안타까움은 두 가지 방향으로 작동한다. 하나는 안으로, 하나는 밖으로, 먼저 밖으로. 일본의 침략, 나아가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비판이다. 하긴 이 선명한 비판조차도 근대화라는 망상에 빠져 호도하는 모양이다. 제국주의 침략의 부당성을 오히려 부정하고 근대화 논리에 휘둘려서 오히려 식민지의 긍정성을 부각하는 주장이 있다. 물론 통계와 실증이라는 이름으로.


360

안으로는 '빨리 망했으면', 그래서 '강대한 새 나라가 있었으면'하는 관념을 형성한다. 좀 더 빨리 망해서 사회나 나라가 바뀌고 왕조든 뭐든 정체의 전환이 이루어졌다면 식민지로 전락하는 욕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움, 애처로움의 표현이다.


그런데 이 '빨리 망했으면' 관념은 하나의 가정이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는 말은 역사가 가정이 낳을 허구에 기초하지 않고 사실에 기초해서 논의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빨리 망했으면'이라는 가정은 이미 역사학의 궤도를 이탈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어디로? 역사가 임의적일 수 있다는 데로! 거듭 말하지만, 역사에 우연은 있어도 임의성은 없다. 


조선은 망할 때가 되어 망한 것이고, 하필 그때 우연히 사고를 당한 것이다. 어떤 노인이 나이가 들고 건강이 나빠져 돌아가실 떄가 되었는데, 불행히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치자. 우리는 그때 운이 나빴다고만 말하기가 어렵다. 특히 그 망하는 당사자가 되었을 떄는 그 가정에 온갖 사념이 개입한다.


아쉬움이 원망으로, 원망이 바람으로, 바람이 다시 원망을 낳고, 원망은 다시 아쉬움으로 돌아온다. 이 사이클은 당사자의 논리로만 전개되지 않는다. 거기에 슬쩍 제국주의의 선전히 흘러 들어온다. 식민지의 곤혹은 이미 불리한 지형에 서 있는 그 자체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빨리 망했으면' 관념 자체가 이미 심각한 상처의 소산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관념은 이미 식민사관으로 범벅이 될 운명을 타고났다. 그래서 나는 '빨리 망했으면' 관념이 보이는 모든 글을 경계한다.


362

왜 하필 그때 그랬을까? 조선 사회와 인민들은 광해군 15년 동안의 시간을 '잃어버렸다'. 민생회복, 사회통합, 재정확보, 군비확충, 문화발전 등 어느 하나 제대로 이룬 것이 없이 오히려 그 반대로 흘러갔다.그 15년을 잃지 않았다면, 동아시아 판도는 달라졌을 것이다. 중원의 판도까지 좌우할 수는 없더라도 동아시아 외교에서 발휘할 수 있는 주체적 운신의 폭은 넓었을 것이다.


조선 사람들이 임진왜란의 경험을 허투루 버려두지도 않았을 것이며, 사회 안정과 생산력 제고는 자강의 질과 수준을 높였을 것이다. 사림의 헌신적인 리더십과 인민들의 발랄한 생활력이 만나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문화를 아름답게 꽃피웠을 것이다.


광해군 때 잃어버린 15년의 나라 꼴을 회복하는 데, 침략 전쟁 두번을 포함하여 인조, 효종 연간 30년 이상이 걸렸다.


인조반정 이후 사람들은 다시 삶을 시작하고 있었다. 반정은 그들이 선택한 행위이기도 했지만,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그러므로 선택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었든 그들은 다시 농사를 지어야 했고, 바닥 난 재정을 긁어모아 나라를 운영해야 했으며, 후세를 낳고 기르고 가르쳐야 했다.


무너진 사회의 기강을 세워 그래도 좀 더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야 했으며,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어야 했다. 그러다가 미처 여력이 없던 차에 닥친 침략에 허둥대기도 하고 답답하여 죽고 싶기도 했다가, 다시 일어서 하루하루 이 땅에서의 삶을 이어갔을 것이다. 지금, 우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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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9. 22:52 기억의 습작

독립운동가이자 북한의 정치가였던 윤공흠(1904~?)에 대해 다음 백과사전위키피디아 한국어 사이트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중국의 화베이[華北] 지방에서 결성된 화북조선독립동맹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8·15해방이 되자 귀국했으며, 1946년 8월 북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중앙위원이 되었다. 1952년 11월 내각 재정상, 1954년 3월 상업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1956년 조선노동당 8월 전원회의 당시 '8월 종파'사건을 일으킨 장본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8월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에 대한 개인숭배를 비판하고 '중공업우선, 경공업과 농업의 동시발전' 노선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회의직후 서휘·이필규 등과 함께 당중앙위원직과 당적이 박탈되었으나 소련 등 외세의 간섭으로 곧이어 열린 9월 전원회의에서 당적이 복구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 직후 중국으로 망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공흠(1904~?)은 일제 강점기 때 화북조선독립동맹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이자 북조선의 정치인이다.[1] 1956년 8월 조선노동당 전원회의 당시 8월 종파사건을 일으킨 주동자 중의 한 사람이다.

일제 강점기에 중국으로 건너갔다. 그 후 중국의 화베이(華北) 지방에서 김두봉최창익무정 등에 의해 결성된 화북조선독립동맹에 가담하여, 의 일원으로 활동했다.[1]

1945년 8·15해방이 되자 귀국했으며, 1946년 8월 북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중앙위원이 되었다. 1948년 9월 북한 내각이 성립되자 이에 참여하였다.

1952년 11월 내각 재정상에 임명되고.[1]1954년 3월 내각 상업상으로 자리를 옮겼다..[1]

1956년 8월 조선로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에 대한 개인숭배를 비판하고 '중공업우선, 경공업과 농업의 동시발전' 노선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반대했다.[1] 회의직후 그는 서휘이필규 등과 함께 조선노동당 당중앙위원직과 당적이 박탈되었으나, 소련 등 외부의 간섭으로 곧이어 열린 동년 9월의 북조선 전원회의에서 당적이 복구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 직후 중국으로 망명한 것으로 알려졌다.[1]


윤공흠과 관련하여 최근에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동독-북한 외교문서 관련 사료 정리 및 해제 작업하다가 흥미로운 글을 하나 발견했는데, 1962년 주 북한 동독 대사인 슈나이데빈트는 주 북한 체코 대사인 코후섹(Kohousek)으로부터 "1956년 당에서 축출된 후 중국으로 이주한 전 조선노동장 중앙위원회 위원이 중국 정부에 의해 북한 첩보기관으로 넘겨졌다"라는 소식을 들었다고 동독 외무성에 보고를 하였다. (베를린 연방문서고 소재 Bestand DY 30, Band 3646) 누구라고 정확하게 써있지는 않으나 아무래도 윤공흠을 말하는듯....하다는 사실을 내가 제일 먼저 확인한것은 아닐까...마 그런 생각이 들어서 자랑삼아 올려봅니다. (위키백과에 언급된 이와 관련한 내용은 본인이 추가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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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6. 26. 20:47 기억의 습작

방언

 1. 어떤 비극적인 대사 중간에 일종의 지방색을 띤 말투가 끼어든다면, 아무리 아름다운 문학 작품이라도 추하게 일그러지고 경청하던 관객들은 모욕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수업 중인 배우 지망생이 제일 먼저, 반드시 해야 할 것은 자신의 말투에서 방언의 모든 결점들을 없애고 완벽하고 순수한 발음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무대 위에서는 그 어떤 지방색도 쓸모가 없다! 무대 위에서는 오직 고상한 취향, 예술 그리고 학문을 통해 훈련되고 세련된 순수한 독일어만이 영광을 누려야 할 것이다.


 2. 방언을 쓰는 습관과 싸워야 하는 사람은 독일어의 일반적 규칙을 준수하고, 새로 연습해야 하는 발음을 아주 명확하게, 심지어는 실제로 그래야 하는 것보다도 더 명확하게 발음하려고 애쓰는 것이 좋다. 이 경우에는 과장된 발음을 하라고까지 권하고 싶은데, 그렇게 한다고 손해를 볼 위험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에는 항상 옛 습관으로 되돌아가고 싶어 하고 과장된 것을 스스로 조화롭게 고치려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발음

 4. 그러나 발음이 '완벽하다'는 것은 한 단어에서 어떤 자모도 억압받지 않을 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자모들이 그 진정한 음가에 따라 발음될 때를 말한다.


 5. 발음이 '순수하다'는 것은 모든 단어들이 그 의미가 쉽고도 틀림없이 청중에게 전달되도록 발음될 때를 말한다.

 완벽함과 순수함 - 이 두 가지가 결합되어 있을 때에야 발음은 완전무결해지는 것이다.


 괴테, '배우 수칙(발췌)', "문학론", pp. 6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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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6. 14. 15:56 기억의 습작

프레임의 법칙: 경남 함양 정여창 고택

 한옥의 창문은 액자나 다름없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방에다 그림 같은 것을 잘 걸어두지 않았나 보다. 문을 열면 소나무가 보이고, 자연이 집안으로 달려든다. 거리가 소멸한다. 밖에서 방 안을 들여다볼 때도 매한가지다. 문을 통해서 드러난 방안의 풍경은 프레임 속에 갇혀 있다. 특별하게 강조된 정경으로 다가온다. 한옥에서 문은 모두 영화와 같다. 58

 

나무의 의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타푸놈 사원을 감싸 안은 거대한 나무를 한참 보고 있으면 나무가 아니라 거대한 동물 같다. 시간을 먹고 사는 동물인 나무는 서서히 석조 건물을 해체한다. 본래의 땅에 숨어 있는 흙을 되찾으려 한다. 시간으로 건물을 전복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나무의 의지다. 나무의 의지는 신을 섬기려는 인간의 욕망을 무화시킨다. 70

 

악의 신, 선의 신

 (...) 그러나 인간은 지구 상에서 악의 상징을 만든 유일한 생명체다. 106

 

죽음과 건축

 죽음은 사라지는 것이지만 건축은 새롭게 짓는 일이다. 옛사람들에게 죽음은 삶의 종결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믿고 살았고 그렇게 되길 간절히 바랐다. 이것은 오늘날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죽어서도 살아갈 집을 짓는다.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죽음의 장소, 즉 망자의 '집'을 짓는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모든 구성원이 동의한, 그렇게 해서 한 번 정해진 장례 풍습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장례 풍습은 인간의 가장 보수적인 부분 중 하나다.

 그런데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죽은 자들을 위한 건축은 모두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무덤에 대해 말할 수 있겠는가? 마르셀 뒤샹이 자신의 묘비에 "죽은 사람들은 모두 타인이다"라고 썼듯이, 이 세상의 모든 무덤은 살아있는 사람들, 살아갈 사람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을 위한 것이다.

 동서양의 옛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공통된 매장 관습을 가지고 있었다. 망자에게 수의를 입히고, 관에 넣고, 땅을 파고, 지하에 묻는 것이다.다만 지상에 드러난 형식이 다를 뿐이다. 이를테면 봉분인가 석재 장식물인가 하는 차이가 있다. 장례 풍습을 정교하고 엄숙하게 제도화하는 데 이바지한 것은 개별 종교의 교리들이다 그중 불교는 망자의 집을 짓는 대신 화장한 시신을 사리함에 보존한다. 망자의 집을 짓는 것은 죽어서 다시 산다는 '부활'을 전제한 것이다. 그곳은 죽음을 환기하는 장소이자 삶의 희망과 절망이 드러나는 곳이다. 엘리아스 카네티가 "군중과 권력"에서 말했듯이 산 사람이 죽은 사람 앞에서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는 장소다. 무덤은 죽은 자가 거주하는 곳이라기보다는 산 자가 살아 있음을 기억하는 곳이다.

 문득 떠오른 궁금증 하나. 새들의 무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장례 풍습 중 하나인 조장은 죽음의 건축을 새롭게 생각하게 한다. 새들이 주검을 먹고 생기를 얻어 창공을 날아갈 때, 실은 죽은 자의 영혼을 싣고 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단지 상징만은 아닌 것 같다.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가 파란 이유는 물론 물과 공기 때문이지만, 어쩌면 이 땅을 살다간 수많은 영혼이 하늘을 떠다니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지구는 육신에서 빠져나온 영혼들의 무덤일 것이다. 새들의 몸을 빌린 영혼의 여행은 죽음을 사라지게 한다. 127

 

묘지 사례: 헝가리 부다페스트

 죽은 사람들과 시간은 이 공간을 '장소'로 만든다. (...) 136

 

죽음의 문화: 중국 황화 지역

 북망, 별 무덤들, 부장품, 장례관습. 죽음의 문화.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죽은 자를 어떻게 떠나보내는가에 따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삶도 달라진다. 141

 

신성한 것에 대하여

 어느 시대나 인간들이 사는 곳에는 신성한 것이 있다. 금기의 율법 없이 신성한 것은 보호되지 않는다. 금기를 명시하거나 기호 체계로 상징을 만드는 것은 공동체의 질서를 지속하기 위한 것이다 금기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그런 규율을 통해 신성한 가치를 지키려는 것이다. 그것은 신일 수도 있고 정령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집 안에, 마을에, 도시에 신을 모신다.

 니체가 말했듯이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신이 탄생한 것이다." 따라서 "신도 죽어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니체는 그렇게 신을 죽였다. 위버멘쉬, 초월적 인간, 영겁회귀의 개념은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나온다. 현대인은 신을 죽이고 스스로 신처럼 되었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신성한 것을 잃어버렸는지 모른다.

 그러나 신의 흔적은 지상에 계속 남아 있다. 종교의 이름으로 모셔지는 하나님과 예수, 석가모니 등도 신자들의 마음속에만 있는 게 아니라 견고한 '집' 속에 거주한다. 신성한 것은 유랑하는 게 아니라 특별한 장소에 정주한다. 그래야 우리가 길을 잃지 않고 '그곳'을 찾고 확인할 수 있다. '기억하고 확인하는 장치' 없이 신은 존재할 수 없다(또한 신은 그 뿌리를 언어의 '집'속에 숨겨놓고 있다. 경전은 숨은 신이다). 역사는 사라지고 시간은 폐허 속에 있다. 지중해 문명의 폐허 속에, 그리스 프리에네의 폐허 속에, 수천 년을 지속한 옛사람들의 신성함이 숨을 쉬고 있다. 고대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은 폐허가 된 이후 더 오랫동안 신전의 증표로 남아 있다.

 성지 순례로 떠난 요르단과 이스라엘에서 수많은 유적을 마주쳤다. 빛바랜 사진처럼 희미해진 유적들은 성지를 확인하는 순례객들의 신발 자국으로 덧칠되어 있었다. 성스러움은 사라지고 집과 장소에 대한 해설만 남아 있다고 할까. 예수는 지금 이스라엘의 성지에 있지 않다. 너무 번잡한 나머지 한국의 조용한 사찰로 이주했을지 모른다. 아무튼 이 시대는 성스러운 것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지 않는듯하다.

 수많은 사람이 비판하는 조선왕조 500년은 그래도 성리학이 있어 신성한 시대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것을 인정할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남명 조식처럼 의 앞에서 반듯한 기상을 지켜갔던 성리학자들은 신과 초월자를 만들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사람을 존경할 방법을 모색하고, 모두가 평등한 세계를 만들기 위해 실천하는 '신성한 가치'를 역설했다.

 신과 더불어 사는 것보다 자연 속에서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지혜를 찾아 나섰던 성리학자들의 태도는 이 시대에도 유용하지 않을까?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 시대는 과연 무엇을 신성한 것으로 여기는가? 147

 

온돌시스템: 터키 페르게

 (...) 경기장이 모두 궁륭 구조의 조합으로 축조 160

 

세례 요한 교회: 터키

 세례 요한의 교회는 진입하는 순서에 따라 공간이 열렸다 닫혔다 하면서 극적인 긴장감을 준다. 언덕 위에 있는 교회의 폐허에서 바라보는 풍경 또한 아름답다. 165

 

새로운 도시 이미지: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가 테라소(Olga Teraso) 절단면이 크고 평범한 도로를 이용해 브라질가의 쌈지공원과 주차장을 계획. 도시 해석에 대한 새로운 잠재력을 보여주었다는 평가. 187

 

도시의 긴장감: 우피치 미술관

 베키오 궁 옆으로 이어진 우피치 미술관의 깊고 좁은 중정은 건축과 도시에 긴장감을 준다. 건물의 간격과 길이, 높이가 적절히 조화되면서 땅과 하늘을 극적으로 연결하낟. 또한 각기 다른 차원의 공간(하늘과 땅)을 중첩시키면서 건축적 풍경과는 다른, 비워진 것들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긴장감을 창출한다. 213

 

하늘의 설계: 피렌체 거리

 피렌체 사람들은 자신들의 품위에 맞도록 집과 도시와 길을 만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들은 하늘을 새롭게 만들었다. 길고, 좁고, 높낮이가 다른 처마들이 하늘을 그린다. 221

 

의미의 생성

 의미는 약속하지 않은 약속이다. 의미는 소통될 때 더 의미다워진다. 그래서 의미를 생성하려면 '약속하려는 의미'를 찾아야 하고, 약속하려면 '쌍방'이 전제되어야 한다. 쌍방이 전제되려면 '소통의 언어' 또한 똑같이 전제되어야 한다. 좋은 '의미'는 '소통'을 지속할 때 더욱 커지고 지속 가능해진다. 이런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모든 것이 생성되는 것이다. 생성된 의미는 오래 살기도 하고 때로는 소멸하기도 한다.

 그러면 의미는 어디에 담겨져 있는 것일까? 그것은 우선 언어와 상징 속에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 내재된 약속으로서의 언어가 아니라면 의미는 '장소'에 거주한다. 장소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늘 언어와 상징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예루살렘의 '십자가의 길'이 의미가 있으려면 적어도 기독교와 예수의 이야기를 이해해야만 한다. 그 전제 속에서 평범한 길이 각별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궁극적으로 어떤 역사적 장소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장소 그곳에 의미가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소통을 통해서만 전달이 가능한 메세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의미는 언어가 아니라 우리들의 '감각'과 '감성'을 통해 나오기도 한다. 감각과 감성이 의미를 느끼고 합성해 내는 것이다. 그것은 물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에 비유된다. 이집트 카르낙 신전에 잠시 머물기만 해도 이전에는 체험해 본 적 없는 강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원형 기둥의 거대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실은 원형 기둥으로 채워진 면적과 기둥 사이의 면적이 엇비슷한 데서 오는 공간의 팽창과 진동 때문이다. 몸은 그것을 잡아내고, 그런 효과에 굴복한다. 그러면서 어떤 의미에 다다른다.

 의미 생성의 또 다른 축은 아마도 시간일 것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지속성을 가진 모든 것들, 그중에서 문화라는 옷을 입고, 시대를 넘어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것들은 모두 각별한 의미가 있다. 우리가 흔히 전통과 지역성의 범주 속에서 다루던 것들은 시간의 축에서 살아 남은 역사일 것이다. 현재의 시간에 녹아있는 과거, 그리고 현재의 시간으로 앞당겨진 미래를 포함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공유된 가치 속에서 반복되는 동일성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구겐하임 미술관 안의 작은 도서실에서, 또는 빈의 쉔부른 궁처럼 기하학적으로 완벽하게 조절된 바로크 시대의 정원과 귀족 취향이 만들어 낸 영토에서, 각별한 의미를 찾아낸다.

 그러나 가장 의미 있는 것은 새로운 '언어'를 만드는 것이다. 기존의 문법과 체계르 루디흔들어 새로운 본질에 다가서는 것.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실현한 독일관의 건축처럼, 현대 건축 태동기의 새로운 조형언어들은 새로운 의미 체계를 만들어냈다. 반면 동양에서는, 특히 조선의 선비들은 이미 존재하는 자연과 특별하게 관계 맺는 방식을 통해서 의미체계를 만든다. 집으로 바다를 끌어오고, 돌을 가까이 다가서게 하며, 산도 그림으로 만든다. 그렇게 해서 자연은 그대로 두면서도, 사람의 시선과 건축적 장치를 결합해 새로운 의미를 생성시킨다. 때로는 다솔사 적멸보궁의 운문의 창을 통해서 와불과 부도의 우연한 겹침도 볼 수 있다. 시선은 우연성을 통해서 에기치 못한 의미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인간들이 읊어내는 시적 언어만큼 애매하면서도 무한한 의미에 닿는 것이 있을까? 우리의 삶 자체가 의미를 만들어 가는 여정이다. 삶은 의미를 찾아 떠나는 순레길이다. 의미란 손아귀에 들어온 즉시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카뮈가 말했듯이 자실의 의미에 대해 말하는 것은, 인생이란 과연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무의미한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의미를 만들거나 그에 접속하려고 매일매일을 살아간다. 239-241

 

기억, 집단 기억

 "나의 모든 생각들을 뒤집어 놓은 것은 바로 역학이나 물리학에서 사용하는 시간개념이었습니다 너무나 놀랍게도 나는 과학에서 말하는 시간은 전혀 지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말해서 실재하는 모든 것을 한 순간에 한꺼번에 다 펼쳐 놓는다 해도 사물들에 대한 우리의 과학적 인식에는 달라질 것이 아무것도 없을 거라는 것을, 그리고 실증과학이란 본질적으로 이렇게 지속을 제거하는데서 성립하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제논의 역설에 의하면, 날아가는 화살은 결코 과녁에 도달하지 않는다."

 - 앙리 베르그손, "물질과 기억 - 반복과 차이의 운동"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존재는 본질에 우선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 인간의 본질은 무엇으로 채워지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기억'이 아닐까 싶다. 개인은 개별적인 기억으로, 국가나 민족은 집단적인 기억으로 본질을 채우면서 존재를 지속하는 게 아닐까? 개인은 실존하는 인간으로, 국가나 민족은 정체성을 갖는 실체로서 말이다 여기서 두 존재에게 모두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기억이 단절되거나 상실된 상태에서는 개체나 집단이 지속될 구심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치매나 알츠하이머병을 그토록 두려워하는 것은 기억이 사라지면 나의 존재 근거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기억이 사라지는 것조차 알 수 없는 비존재의 상태로 전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억상실증 환자들의 유일한 희망은, 메모리칩이 일시적으로 고장났으므로 조만간 기억을 되찾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진단일 것이다 그래야만 생이 지속될 수 있으므로.

 로마 도시 한복판에서 만나는 '폐허'는 역사의 쓰레기가 아니라 몇 천 년째 지속되는 집단기억이다. 고대 로마는 멸망했지만, 아직도 우리 뇌리에 남아서 오늘날 전 세계인의 '고대 로마'가 되었다. 2000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로마의 또 다른 세계화다. 폐허를 통해 로마 제국이 다시 세계의 도시로 부활한 힘은 집단기억이 갖는 지속성에서 나온다.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문대인 '관성대'도 그렇고, 옛 서원들도 그렇고, 결국 이 세상의 모든 유적은 집단적으로 학습되어 지속되는 집단기억의 힘이다. 그것이 역사이고, 역사가 늘 현재화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가장 강력한 기억은 전쟁의 기억이다. 전쟁터에서는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을 죽이는 것을 '살인'이라 부르지 않는다. 인간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게 삶이라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죽음이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집단기억은 전쟁의 흔적을 몸에 새긴다. 몸으로 겪은 전쟁을 기억 속에서 다시 치러야 하는 이 비극은 전쟁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은자들만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거의 잊고 사는 한국전쟁이나 베트남 전쟁에서 용케 살아남은 사람들의 집단기억은 우리에게 '고통의 연대'를 요구한다. 우리들의 목숨을 던져서라도 연대해야 하는 아픔을. 273

 

포룸 노마눔: 이탈리아 로마

 (...) 로마의 폐허는 로마 군대의 힘보다 더 세서 전쟁 없이도 세계를 정복한 셈이다 때로는 집단기억이 폭력을 압도한다. 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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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6. 12. 15:25 기억의 습작

 (아도르노의 말에 따르면 문화풍경(Kulturlandschaft)은)땅 위에 각인된 역사.. 그것이 우리를 진실하게 하는 풍경이라는 것이다.역사의 흐림이 정지된 폐허는 화석화한, 근사한 문화풍경이다. "폐허의 필요성"이라는 책을 통해 고전적 푸역ㅇ의 의미를 현대에서 더욱 확장한 잭슨의 말은 문화풍경의 의미를 더욱 증폭시킨다. 그가 쓰길, "폐허는 복원을 위한 단서를 제공하기도 하며 또 원형으로 복귀하게도 한다. 낡은 질서는 새롭게 탄생되는 풍경을 위해 사라져야 한다. ... 역사는 존재하기 위해 중단되는 것이다."(p. 71)


 건축가 민현식은 "우리 사회 전체를 지배해 온 정치적 권력, 종교의 힘 또는 무형의 권력인 자본의 위력들이 드러내는 기념비적 건조물들은 이제 새 시대에는 사라져 주어야 한다"고 했으며, "땅의 조건에서 도출된 형상이 하나의 인자가 되어 주변과 합일된 풍경을 이루는 것, 인간과 자연에 대한 윤리, 이러한 정신은 바로 변화, 전체보다는 개체의 정체성, 일상의 회복을 속성으로 하는 새 천년의 시대, 다중심 다원화의 시대적 가치로 고양되어야 한다. 그래서 천지인을 하나로 인식하여 자연과 합일하려 했던 우리의 전통정신이 오늘에 다시 회복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p. 74)


 모든 땅에는 과거의 기억이 손금과 지문처럼 남아 있다. 우리 모두에게 각자 다른 지문(指紋)이 있듯이 모든 땅도 고유한 무늬(地紋)을 가지고 있다. 더러는 자연의 세월이 만든 무늬이며, 더러는 그 위에 우리의 삶이 연속적으로 새긴 무늬이다. 이는 우리가 땅에 쓴 우리 삶의 기록이며 이야기이다. 따라서 땅은 장대하고 존엄한 역사서이며, 그래서 위하고도 귀하다. 이를 지문(地紋, landscape)이라고 하자. (p. 79)


 건축은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세운 자의 영광을 만세에 기리기 위해 기념비적 건축이 세워졌어도, 혹은 가진 자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온갖 기술적 성취를 이루며 하늘 높이 솟았다 하더라도, 우리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그 겆축도 결국은 중력의 법칙을 이겨낼 수 없다. 남는 것은 오로지 우리가 거기에 있었다는 기억뿐이다. 그것만이 구체적 진실이 된다. (p. 80) 


 이 장소를 다시 태어나게 한 것은 원래의 땅이 지녀왔던 고유함에 대한 발견이다. 여기에 새로운 소망이 더해져 특별함을 만들고, 결국 여기를 지나는 시간과 사연들이, 이 장소의 풍경을 끊임없이 변화시키며 우리들의 선한 기억을 만든다. 건축은 공간으로 구축되지만, 시간으로 완성된다는 것이다. (p.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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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2. 8. 14:24 기억의 습작
사실 행복이 무엇인지 직감적으로 깨달았던 평범한 남녀가 존재했기에, 송견과 양주처럼 우리 삶을 긍정한 철학도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송견과 양주는 국가만이 모든 행복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라는 생각을 철저히 거부했다. 그것은 개인의 삶과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행복만이 절대적 목적이 될 수 있다는 평범한 남녀의 믿음을 반영한 것이다. 전쟁 포로를 불길에 내던지며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상나라, 시초점을 치면서 국가의 미래를 점치던 주나라, 그리고 마침내 신정정치에서 세속 정치로 이행했던 춘추시대. 역사는 점차 변화하는 듯했지만 지배계급 내부의 논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상나라 때도, 주나라 때도, 그리고 춘추전국시대에도, 어쩌면 지금까지도 소박한 대다수 사람들만이 삶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잊지 않았을 뿐이다. - 강신주, 철학의 시대: 제자백가의 귀환, pp. 279 ~ 280 
  괜히 지금 하는 공부하기 싫어서 이책저책 찔러보고 있는데, 이 책은 요즘의 현실도피(?)와는 상관없이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사실 1권은 진작에 다 읽었고, 2권을 읽어야 하는데....재미있어서 약간은 아껴보자는 심정으로 안읽고 있을 정도. (..라기보단 실은 도서관서 책 잔뜩 빌렸는데 반납일까지 읽어야 하니까 뭐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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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24. 11:09 기억의 습작
춘추전국시대 조나라 무령왕이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이민족의 방식으로 군복을 바꾸고 군대를 개편하고자 했지만 대신들의 반발이 거센 와중에, 비의라는 신하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저는 일을 하려다 의심이 들면 공을 이룰 수가 없고 행동하려다 의심이 들면 명성을 얻을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왕께서는 이미 세속의 풍습을 버렸다는 험담을 짊어지기로 결심하셨으, 세상의 논의를 생각할 필요도 없으십니다." 

이쯤 되면 어디선가 어떤 분께서 무릎을 탁 치며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고 손녀딸을 안고 펄쩍펄쩍 뛸 법도 하지만 비의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면,

"어리석은 자는 이루어진 일에도 어둡지만 지혜로운 자는 일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전모를 파악한다고 하니, 왕께서는 무엇을 의심하고 계십니까?"

 그 분의 그간의 행적을 미루어보면 이루어지기도 전에 전모를 파악했다기 보다는 이루어진 일에도 어두웠던 적이 더 많으니까...뭐 본인만 모르는게 (모두의) 불행이랄까.

출처는 강신주의 "철학의 시대 - 제자백가의 귀환" 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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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0. 21. 16:35 기억의 습작
자기가 속세의 누구보다도 못하다는 것뿐 아니라 자기는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죄가 있다 - 모든 인류의 죄, 세계의 죄, 개인의 죄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자각했을 떄, 그때 비로소 우리의 은둔 생활은 목적이 달성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이 지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분명히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보편적인 만인 공통의 죄만이 아니라 우리들 각 개인이 이 지상에 사는 모든 사람 및 개개인에 대하여 개인적인 죄를 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자각은 단지 수도사뿐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생활의 월계관이라 할 것입니다. (......)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결코 오만한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됩니다. 작은 것에 대해서나 큰 것에 대해서나 오만하지 마십시오. 우리를 배척하는 자, 모욕하는 자, 비방하는 자, 그리고 우리를 중상하는 자들을 미워해서도 안 됩니다. 무신론자, 악의 전도자, 유물론자들도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 중의 선량한 자들뿐 아니라 악한 자들까지도 결코 증오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는 그런 사람들 중에도 선량한 인간이 많이 있으니까요.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는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여, 아무리 기도해줄 사람이 없는 모든 사람들을 구해 주옵소서. 주께 기도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까지도 구해 주옵소서'라고. 또그리고 또 이렇게 첨가하십시오. '주여, 제가 이런 기도를 드리는 것은 결코 오만해서가 아닙니다. 저는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비천한 자입니다'라고.  

 카라마조프의 형제 (상) (범우사, 1995, 266-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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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 13. 22:08 기억의 습작

 

새해의 맹세

1. 말로나 글로나 수다를 떨지 말 일.

2. 겸손하고 너그너우며 제 잘한 일을 입밖에 내거나 붓끝에 올리지 말 것.

3. 남의 잘못, 학설의 그릇됨을 타내지 말고 제 바른 행동과 제 깊은 공부로써

   이를 휩싸버릴 것.

4. 약속을 삼가하고 일단 승낙한 일은 성실히 이를 이행할 일.

5. 쓰기보다 읽기에, 읽기보다 생각하기에.

6. 사소한 일이라도 먼 앞날을 헤아리고 인생의 깊은 뜻을 생각해서 말하고 행할 일.

7. 날마다(하루도 거르지 말고) 무엇이든 생각하고, 그 결과를 일기(日記)로 적어 둘 것.
(1950년 1월 1일)

 김성칠, 역사 앞에서, 창작과 비평사.

이 책을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연구실에 있던걸 집으로 가져온 것 같은데... 찾지를 못하겠다. 나의 새해의 맹세는 조만간 올려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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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0. 11. 11:33 기억의 습작

 자본력이 약한 신문은 이른바 진보세력에게도 만만한 동네북인가, 얼마 전에는 해학과 풍자를 담는 한홍구-서해성의 직설 난에 쓰인 ‘놈현 관장사’라는 표현에 반발하여 국민참여당 유시민씨가 ‘한겨레 절독’을 말하더니, 최근에는 북한의 3대 세습 문제에 관한 민주노동당의 입장을 비판한 신문 사설을 문제삼아 민주노동당 울산시당이 ‘경향 절독’을 선언하고 나섰다.

 경기도 수원의 한 독자가 지적한 대로 한국의 신문은 보수신문과 진보신문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몰상식한 신문’과 ‘상식적인 신문’으로 나뉘는데, 흥미로운 일은 스스로 진보라고 말하는 사람의 <경향신문>이나 <한겨레>를 절독하겠다는 소리는 종종 듣는 데 반해 스스로 보수라고 말하는 사람의 ‘조중동’을 절독하겠다는 소리는 듣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적용될 듯싶지만, 나는 그보다 한국의 이른바 진보의식이 성찰과 회의, 고민 어린 토론 과정을 통해 성숙하거나 단련되지 않고 기존에 주입 형성된 의식을 뒤집으면 가질 수 있는 데서 오는 경박성, 또는 섬세함을 통한 품격의 상실에 방점을 찍는다.

 신문 논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조용히 끊으면 그만일 터인데 소문내거나 선언하는 모습이 딱 그렇다. 이런 경박성에는 진보를 택한 자신에 대한 반대급부 요구도 담겨 있다. 경향이나 한겨레가 자기들 요구에 반드시 부응해야 한다는.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북한에 관해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세계는 일단 지극히 부정적으로 형성되는데, 그중 일부가 한국 현대사에 관한 독서나 특별한 경험을 통해 그때까지 형성한 의식을 뒤집는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성찰과 회의, 고민이 생략됨으로써 ‘극도의 부정’이 ‘극도의 긍정’을 낳고 ‘모 아니면 도’ 식의 시각만 남아 섬세함이나 균형감각이 설 자리를 잃는다는 점이다.
 
 예컨대 북한 내정에 간섭하는 것과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게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는 데 섬세함까지 필요하지 않음에도 삼대 세습을 비판하면 내정간섭이며 반북이 되므로 남은 선택지는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의 “말하지 않는 것이 나와 민주노동당의 판단이며 선택”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심지어 “진정한 진보는 용납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까지 포용할 수 있는 톨레랑스를 가져야 한다”(민주노동당 부설 새세상연구소 박경순 부소장의 말)는 궤변까지 나온다. 톨레랑스는 차이를 용인하라는 것이지 용납할 수 없는 것을 포용하라는 게 아니다.

 북한 관련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나에겐 고정관념처럼 떠오르는 말이 있다. 프랑스 파리 15구에서 만난 한 식당 주인의 “고픈 배는 나중에 채울 수 없다”는 말이다. 다른 모든 것은 나중에 채울 수 있지만 지금 주린 배는 나중에 채울 수 없다. 그럼에도 사르트르가 강조한 ‘지금 여기’에 관심이 더 큰 나는 북한의 3대 세습에 비판적이면서도 북한에 쌀을 보내지 않는 이명박 정권에 더 비판적이며, “권력이 (선출되지 않는) 시장에 넘어간” 한국 사회에서 삼성을 비롯한 재벌기업의 세습 문제와 독재자의 딸 박근혜씨가 가장 강력한 차기 대선후보라는 점을 되돌아보자고 주문한다.

 그러나 통일과업을 지상명제로 주장하고 그것을 진보의 자격조건인 양 강조하는 세력이 북한의 세습체제가 앞으로 굳어질 때 통일 과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에 관해 말하지 않는 것은 자기부정이 아닌지 묻고 싶다. 북한 세습체제는 우리의 통일 여정에서 분명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겠는가. 리영희 선생도 지적했듯이 통일은 남북 양 체제의 변화를 전제하지 않으면 불가능한데, 북한의 세습체제를 그대로 둔 채 그리는 통일의 상은 어떤 것인가. 이 간단한 질문에도 ‘말하지 않는 게’ 민주노동당과 당대표의 ‘판단이며 선택’일까

홍세화, 한겨레, 2010년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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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블로그질을 안한것을 신문 칼럼 퍼오는 것으로 대신....
읽다보니 괜히 그럼 분단당시 서독에선 이런 얘기가 오고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들고.

posted by Gruenta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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