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Gruentaler
길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발길을 멈추고 주저앉고 말면 우리 삶은 거기서 끝나게 됨이라 - 이청준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2010. 5. 10. 09:48 기억의 습작
 대학신문 칼럼을 보니 그 날이 8일이었나보다. 그때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소식을 들었던 나는 내일쯤이 아닐까 싶었는데. (사실 당일날 소식을 듣긴 했다. 그날 나는 이유없이 무척 머리가 아팠고, 전화가 계속 오는지도 모른채 아파서 누워있었다. 마지막으로 소식을 전할려고 했던 것이었을까.) 3년이 지났다. 못다한 것을 지금은 하고 있을지. 아직 여기 있다면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사실 난 애써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별로 해준것도 없고,남아있는 사람이 그 몫만큼 해야할텐데 난 그 반도 못한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생각하면 내가 한심해져서 생각 자체를 안하려고 했다. 그래, 그래도 1년에 한번은 생각하고 조금은 미안해해야지.

==========

 네가 걸어 놓은 노래를 듣고 있어. snow patrol에서 oasis를 지나 장필순으로 끝나는 여섯 곡. 이 노래는 네게 어떻게 스며들었을까. 아마 나는 절대 알 수 없겠지. 너의 느낌에 대해 생각하면 아득해지듯 지금은 내 마음도 희미해. 왜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여자 아이에 대해 말하려는 걸까. 무엇보다 이런 글을 써도 되는 걸까? 하지만 모든 설명은 아무리 해도 불충분할 게 틀림없으니 다만 이렇게 말해두자. 아마 바람 같은 걸 거라고. 아득한 너의 느낌이 선연해지길, 희미한 나의 마음이 투명해지길, 또 누군가 이 상황을 알아채 주길 바라는.

 너는 아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86년 5월 21일, 그 여자아이가 스물두 살이었을 때의 일이야. “숱한 언어들 속에 나의 보잘것없는 한마디가 보태진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니. 그러나 다른 숱한 언어가 그 각각의 인간의 것이듯 나의 언어는 나의 것으로 나는 나의 언어로 말할 수 있겠지.” 또, “**아, 뭘 할 수 있겠니, 내가. 지긋지긋하게 싫더라도 어쩔 수 없음을 네가 모르지 않을진대 요구하지 마, 요구하지 마! 강요하지 말 것. 구체적인 것이다, 산다는 건.”

 자신의 언어가 지니는 힘과 구체적일 수밖에 없는 삶의 속성을 이렇게 정확한 문장으로 쓰면서 어떻게 죽음을 결심했을까? 유서와 투신 사이가 너무 멀어 투신이 꼭 유서의 일부로 보여. ‘요구하지 마’ 뒤에 찍힌 것처럼 그렇게 전체가 선명한 느낌표 같아. 실은 네게 우리의 거짓말에 대해 말하고 싶었지. 마치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듯 삶을 향한 에너지를 뿜는 느낌표가 아니라 어떻게든 이어가는 데에만 급급했던 쉼표 말이야. 그건 이런 거지. 하나,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우리는 스스로를 쉽게 용서했고) 둘, 세상 같은 건 더러워서 피하는 거지.(우리는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했으며) 셋, 진짜 하고 싶은 말은 하지 않는 편이 낫지.(우리는 더 이상 서로를 믿지 않기로 했지) 이렇게라도 변명을 하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순간이 있었음을 왜 잊었겠니. 하지만 언젠가부터 쉼표가 삶을 채우면서 사는 게 수월해지고 급기야 하찮아지기까지 했음을 고백해야겠다. 아니 하찮아진 건 바로 우리 자신이겠지.

 처음 유서를 읽었을 때로 돌아가. 그리고 다시 유서를 읽어. 07년 5월 8일, 네가 스물여섯이었을 때의 일이야.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어 행복하다며 왜 죽었을까? 의지로 안 되는 일이 있어 어쩔 수 없다고 할 때 그 어쩔 수 없음이란 여자 아이가 말한 것과 같은 의미일까? 다음 생에서 꼭 이루고 싶다던 그 일은 내가 짐작하는 그 일이 맞을까? 그때 나는 삶이 무서워져서 ‘왜’라는 단어를 꾹 삼켰어. 깊은 곳에 가라앉아 여간해서는 떠오르지 않도록. 살아있으니 그냥 살아가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제는 읽을수록 여자 아이의 ‘요구하지 마’와 그 뒤에 찍힌 느낌표, 너의 ‘다음 생’과 ‘꼭’이라는 말이 몹시 뜨겁네. 미지근함이 누군가의 더운 피까지 식힌 건 아닐까. 사람과 세상에 정답을 가진 것처럼 굴던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죽여 온 걸까. 언젠가 니체의 운명애(amor fati) 밑에다 “이것이 생이란 말인가, 이제 그만!” 이라 적었지. 허무주의자가 되는 게 삶에 대한 마땅한 태도라고 생각했던 거야. 그렇다고 이제 네게 “이것이 생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다시 한 번!”하며 니체 풍의 삶의 찬가를 불러줄 순 없지만 무턱대고 쉼표 찍는 일만은 멈출 수 있을 것 같네.

 연구실 창가에 서면 여자 아이의 추모비가 보여. ‘박혜정 열사 추모비’. 아방궁 곁이야. 노래는 몇 번 반복되었을까. 종일 문장을 지워도 네 느낌과 내 마음과 이 상황은 희미하기만 하고 바람만이 커져가. 편지인 척하는 글은 여기서 줄여야지.

 황예인, 박혜정 열사 추모비 아래서 두 벌의 유서를 읽다, 대학신문, 1784호, 2010년 5월 10일.

posted by Gruenta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