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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걸어 놓은 노래를 듣고 있어. snow patrol에서 oasis를 지나 장필순으로 끝나는 여섯 곡. 이 노래는 네게 어떻게 스며들었을까. 아마 나는 절대 알 수 없겠지. 너의 느낌에 대해 생각하면 아득해지듯 지금은 내 마음도 희미해. 왜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여자 아이에 대해 말하려는 걸까. 무엇보다 이런 글을 써도 되는 걸까? 하지만 모든 설명은 아무리 해도 불충분할 게 틀림없으니 다만 이렇게 말해두자. 아마 바람 같은 걸 거라고. 아득한 너의 느낌이 선연해지길, 희미한 나의 마음이 투명해지길, 또 누군가 이 상황을 알아채 주길 바라는.
너는 아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86년 5월 21일, 그 여자아이가 스물두 살이었을 때의 일이야. “숱한 언어들 속에 나의 보잘것없는 한마디가 보태진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니. 그러나 다른 숱한 언어가 그 각각의 인간의 것이듯 나의 언어는 나의 것으로 나는 나의 언어로 말할 수 있겠지.” 또, “**아, 뭘 할 수 있겠니, 내가. 지긋지긋하게 싫더라도 어쩔 수 없음을 네가 모르지 않을진대 요구하지 마, 요구하지 마! 강요하지 말 것. 구체적인 것이다, 산다는 건.”
자신의 언어가 지니는 힘과 구체적일 수밖에 없는 삶의 속성을 이렇게 정확한 문장으로 쓰면서 어떻게 죽음을 결심했을까? 유서와 투신 사이가 너무 멀어 투신이 꼭 유서의 일부로 보여. ‘요구하지 마’ 뒤에 찍힌 것처럼 그렇게 전체가 선명한 느낌표 같아. 실은 네게 우리의 거짓말에 대해 말하고 싶었지. 마치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듯 삶을 향한 에너지를 뿜는 느낌표가 아니라 어떻게든 이어가는 데에만 급급했던 쉼표 말이야. 그건 이런 거지. 하나,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우리는 스스로를 쉽게 용서했고) 둘, 세상 같은 건 더러워서 피하는 거지.(우리는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했으며) 셋, 진짜 하고 싶은 말은 하지 않는 편이 낫지.(우리는 더 이상 서로를 믿지 않기로 했지) 이렇게라도 변명을 하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순간이 있었음을 왜 잊었겠니. 하지만 언젠가부터 쉼표가 삶을 채우면서 사는 게 수월해지고 급기야 하찮아지기까지 했음을 고백해야겠다. 아니 하찮아진 건 바로 우리 자신이겠지.
처음 유서를 읽었을 때로 돌아가. 그리고 다시 유서를 읽어. 07년 5월 8일, 네가 스물여섯이었을 때의 일이야.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어 행복하다며 왜 죽었을까? 의지로 안 되는 일이 있어 어쩔 수 없다고 할 때 그 어쩔 수 없음이란 여자 아이가 말한 것과 같은 의미일까? 다음 생에서 꼭 이루고 싶다던 그 일은 내가 짐작하는 그 일이 맞을까? 그때 나는 삶이 무서워져서 ‘왜’라는 단어를 꾹 삼켰어. 깊은 곳에 가라앉아 여간해서는 떠오르지 않도록. 살아있으니 그냥 살아가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제는 읽을수록 여자 아이의 ‘요구하지 마’와 그 뒤에 찍힌 느낌표, 너의 ‘다음 생’과 ‘꼭’이라는 말이 몹시 뜨겁네. 미지근함이 누군가의 더운 피까지 식힌 건 아닐까. 사람과 세상에 정답을 가진 것처럼 굴던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죽여 온 걸까. 언젠가 니체의 운명애(amor fati) 밑에다 “이것이 생이란 말인가, 이제 그만!” 이라 적었지. 허무주의자가 되는 게 삶에 대한 마땅한 태도라고 생각했던 거야. 그렇다고 이제 네게 “이것이 생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다시 한 번!”하며 니체 풍의 삶의 찬가를 불러줄 순 없지만 무턱대고 쉼표 찍는 일만은 멈출 수 있을 것 같네.
연구실 창가에 서면 여자 아이의 추모비가 보여. ‘박혜정 열사 추모비’. 아방궁 곁이야. 노래는 몇 번 반복되었을까. 종일 문장을 지워도 네 느낌과 내 마음과 이 상황은 희미하기만 하고 바람만이 커져가. 편지인 척하는 글은 여기서 줄여야지.
황예인, 박혜정 열사 추모비 아래서 두 벌의 유서를 읽다, 대학신문, 1784호, 2010년 5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