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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발길을 멈추고 주저앉고 말면 우리 삶은 거기서 끝나게 됨이라 - 이청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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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만추》의 주 무대인 안개 낀 시애틀은 주인공에게나 관객에게나 상당히 환상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시애틀의 특산물인 - 『무진기행』의 무진처럼 - 안개는 모든 것을 흐리게 하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주인공 두 사람의 감정을 더욱 애틋하게 연출한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 서양 도시가 만든 몽환성을 통해 두 동양인의 이질성을 더욱 돋보인다.

 그러나 시애틀이라는 환상적인 배경은 영화의 서사 속으로 충분히 스며들지 못했다. 전반적으로 《만추》는 상황을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물론 그 부족함을 관객들은 시애틀의 낯선 느낌, 혹은 두 사람의 이방인성을 통해 짐작 할 수 있다. 하지만 관객들이 그 설명의 부재를 쉽게 이해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기에 두 사람이 처한 상황은 제법 현실적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몽환적인 이야기라고 하기는 현실적이며, 현실적이라고 하기는 상황 연결이 충분히 논리적이지 못한 탓에 영화는 그 사이에 낀 채 어정쩡한 모습이다. 그리고 그 어색함은 장면의 전환들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 전후의 장면들이 영화 서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우선 시애틀 시내에서 재회한 두 사람은 놀이공원에서 마주친 다른 두 남녀의 대화를 상황극(?)으로 이어 받으면서 교감을 하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상황극은 현실감 있게 시작하다가 두 남녀가 춤을 추며 하늘로 올라가 환상적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그 다음 장면은 훈과 애나 두 사람이 파한 유령시장골목을 질주하는 장면으로 갑자기 바뀐다. 이 시장에서 애나는 독백조로, 그리고 모국어로 자신의 과거를 밝히고, 훈의 어림짐작을 통해 대답한다. 이 장면 두 사람이 교감하는데 언어와 같은 장벽이 방해가 되지 않음을 지극히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현실에서 환상으로,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과정은, 개별 과정들로만 보면 인상적이지만 한 데 어울려 보면 어딘가 납득하기 힘든, 파편화된 인상이다.

 어색함은 애나의 어머니 장례식에서도 드러난다. 길에서 아무런 기약 없이 헤어졌던 두 사람이었는데, 훈은 어떻게 장례식장을 알고 찾아갔을까? 물론 신문 부고를 통해, 낯선 중국계 이름을 쉽게 찾아 알았으리라는 추정을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시애틀은 대도시가 아닌가. 시애틀에서 처음 다시 마주쳤던 것까지는 정말 우연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하더라도, 아무런 연고 없는 두 남녀가 세 번째로 만나는 것마저 우연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장례식을 마친 뒤 훈과 애나, 왕징과 그의 부인의 대화는 왕징의 부인도 훈의 거짓말을 충분히 눈치 챌 수 있을 법 함에도 자연스럽게 넘어가는데, 그 부분도 사실적이라고 납득하기 쉽지 않다. 훈과 왕징 두 사람이 실제로 싸운 이유를 감추기 위해 둘러댄 “포크 변명”은 희극적이지만 동시에 애나가 영화 내내 억누르고 있던 비극적인 감정을 유일하게 표출할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쓰러져 오열하는 애나를 그저 쳐다만 보고 있었고, 그러다 장면은 다시 한 번 아무런 설명 없이 갑자기 두 사람이 터미널로 가는 장면으로 바뀐다.

 이후 애나와 훈 두 사람은 다시 버스에서 “처음” 만난 것처럼 도시를 떠난다. 이 모습은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 같은 인상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애나의 위치를 물어보는 간수의 전화, 그리고 훈의 소재만을 파악하고 말없이 끊은 옥자 남편의 전화로 안개 속 휴게소에서 현실로 붙잡혀 돌아온다. 하지만 이 전화들도, 특히 훈이 받는 전화는 어딘가 개연성이 부족한 느낌이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한 번 더 현실로 끌어내리는 일종의 확인사살과 같은 느낌이다. 차라리 애나가 전화를 받지 않거나, 훈이 옥자 남편에게 죽임을 (아니면 적어도 발길질이라도) 당했더라면 현실과 환상의 사이에서 더 균형을 맞출 수 있지 않았을까.

 시애틀에서 아픈 기억을 가지고 수 년 만에 돌아온 중국계 애나와, 무언가에 쫓기며 흘러들어왔던 코리안 지골로 훈은 어쩌면 유령투어를 하다 그들을 보고 깜짝 놀랐던 관광객들이 생각했던 대로 정말 유령 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애나는 어머니가 죽은 뒤 재산 분배 과정과 사랑했던 사람이 다른 사람과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과 같은 현실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훈은 애나에게 고객이 원하는 모습이 무엇이든 다 그대로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애나는 훈에게 아무런 요구를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러한 애나의 무(無)요구에 훈이 자연스러운 본 모습을 드러낸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애나는 훈에게 자신처럼 유령이 되어달라고 요구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두 사람은 시애틀의 유령이 되었다. 하지만 영화는 두 유령에게 두 다리로 땅을 딛고 서 있으라고 계속 강요하고 있는 느낌이다. 훈이 조금 더 유령과 비슷했다면, 혹은 영화 시간을 줄였더라면 시애틀에 만난 두 사람이 풀어나가는 이야기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지 않았을까.

posted by Gruenta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