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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발길을 멈추고 주저앉고 말면 우리 삶은 거기서 끝나게 됨이라 - 이청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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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2 23:23 서양사 관련

 나, 하인리히, 국왕은, 우리의 군주인 교황 그레고리우스가 정하고자 하는 규정들 안에서 독일 왕국의 대주교들과 주교들, 공작들과 백작들 그리고 다른 영주들이 나를 고소하였던 불평과 불화에 대하여 교황의 결정에 따라 사죄를 할 것이며, 그리고 그의 충고에 따라서 - 몇 가지 명백한 장애들이 그나 내 자신을 방해하지 않는 이상 - 조정안을 만들 것이며, 그리고 이것이 완성되면 나는 이를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즉, 만약 앞서 말한 군주인 그레고리우스 교황은 그가 안전해질 수 있는 산맥들이나 다른 곳을 넘어 가기를 원하게 된다면 나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이 관련된 한에서, 그는 - 그 자신이나 그와 함께 있거나 그에 의해 보내지거나 어떤 곳으로부터라도 그에게 가고자 하는 사람들 모두 - 앞으로의 생명이나 신체의 부상으로부터 그리고 구속으로부터 올 때, 머무를 때, 혹은 갈 때 그는 안전할 것이다. 나의 허가 없이 그는 자신의 명예에 대치되는 어떤 방해로 고통 받지 않을 것이고, 누군가가 그러한 방해를 하게 될 때, 나는 나의 모든 힘으로 교황의 조력자가 될 것이다.



Gregory, "34 Henry's oath at Canossa  (Jaunary 1077)", trans. E. Emerton, Correspondence, pp. 112-13, Brian Tierney, The Crisis of Church and State 1050-1300, Toronto, 1988, pp. 63-64.

 

 

posted by Gruentaler
2009.04.12 22:51 서양사 관련

 정의의 사랑을 위하여 여러분들은 우리와 함께 같은 대의를 만들었고 그리스도의 봉사의 전쟁 안에서 같은 위험을 감수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이탈리아 입성에서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일의 과정에 대한 이 확실한 이야기를 당신들에게 보내어 특별한 주의를 주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우리에게 보낸 사절들과 함께 만들어진 타협안에 따라 여러분들의 지도자들 중 몇 명이 우리를 관문에서 만나게 되는 날의 약 20일 전에 우리는 롬바르디아로 와서 그 지역을 통과할 수 있도록 그들의 도착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우리가 불안한 시기들 때문에 - 실로 우리가 꽤 믿고 있는 대로 - 우리에게 보낼 수 있는 수행원이 없으며 여러분들에게 다가갈 다른 방법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우리는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경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적지 않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 사이에 우리는 국왕이 우리에게 오고 있다는 확실한 소식을 받았습니다. 그가 이탈리아에 도착하기 전에 그는 자신이 우리에게 사면과 사도의 축복을 얻을 수만 있다면 우리에게 그가 하나님과 성 베드로께 사죄를 드릴 것이고 삶의 그의 방식을 개선할 것과 우리에게 순종하는 것을 계속하기를 제안하는 말을 전했습니다. 오랫동안 우리는 답을 늦췄고 사절들을 통해 마지막까지 그 스스로의 협약에 대한 도리에 어긋난 행동에 때문에 그를 여러모로 몹시 비난하며 오랜 협의를 하였고, 적개심이나 반항의 어떠한 기색 없이, 그는 우리가 머물고 있었던 카노사의 요새로 몇몇의 수행원들과 함께 왔습니다. 그곳에서, 3일 동안, 성문 앞에 서있으면서, 곁에 모든 국왕의 기장을 두고, 맨발과 조악한 차림새로, 그는 사도의 도움과 위로를 참석해있던 모든 사람들과 이 이야기를 들은 모든 사람들이 그의 동기를 청원자들과 눈물들로 탄원하는 동정과 연민으로 마음을 움직일 때까지 많은 눈물로 간청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우리의 이례적인 엄격함에 놀랐고, 몇몇 사람들은 심지어 우리가 교황의 권위의 진지함이 아니라, 오히려 미개한 폭군의 잔인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외치기까지 했습니다.

 
 마침내 그의 끊임없는 회개의 모습과 모든 사람들의 재촉에 굴복하여, 우리는 그로부터 아래에 명시한 보증들을 받아들여 그를 파문의 속박에서 그를 풀어주었고 그를 성모 교회의 은혜로 받아들였습니다. (…) 그리고 이 사안들은 매듭지어진 지금, 우리는 여러분들의 지역에 기회가 있는 대로 신의 도움으로 우리가 보다 완전히 교회의 평화와 세계의 선한 관례에 관계되는 모든 사안들을 확립할 수 있게 되길 원합니다. 우리는 여러분들이 분명히 이해할 수 있기를 원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문서화된 보증들에서 볼 수 있듯이, 모든 협의들은 미결되었고, 우리의 앞으로의 그리고 여러분들의 이의가 없는 동의는 대단히 높은 수준에서 필요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모두, 여러분들이 정의를 사랑하듯이, 선한 믿음 속에서 여러분들이 갖게 된 의무들을 다하고자 노력하십시오. 우리는 우리 자신이 - 우리의 관례가 그렇듯이 - 정의를 통해서이든 자비를 통해서이든, 그리고 그나 우리 자신의 영혼에 위험이 처하는 것 없이 그가 자신의 안전과 명예를 위해 우리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다는 명백한 진술을 제외하면 어떠한 경우에서도 국왕에게 묶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Gregory, "33. Letter of Gregory to the German princes giving an account of the incident at Canossa (Jaunary 1077)", trans. E. Emerton, Correspondence, pp. 111-12, Brian Tierney, The Crisis of Church and State 1050-1300, Toronto, 1988, pp. 6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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