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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발길을 멈추고 주저앉고 말면 우리 삶은 거기서 끝나게 됨이라 - 이청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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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2.18 Sprichwörter 26:16
  2. 2013.12.15 안녕들하십니까,라고 묻는다면
  3. 2013.11.16 Berlin D+52
  4. 2013.11.14 Berlin D+50
  5. 2013.08.21 신실한 변호사를 위한 진혼곡
  6. 2013.08.05 최영미, 서른, 잔치는 끝났다
  7. 2013.04.18 하수정, 올로프 팔메
  8. 2013.04.07 아파트 공화국
  9. 2013.03.29 오항녕,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
  10. 2013.02.05 가구들2
2013. 12. 18. 03:38 기억의 습작

Ein Fauler dünkt sich weiser als sieben, die da wissen, verständig zu antworten.



Wohl denen, die das Gebot halten und tun immerdar recht! (Psalter 106:3)

posted by Gruentaler
2013. 12. 15.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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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16.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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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14.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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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8. 21. 11:56 기억의 습작

"법률 서비스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 이유가 뭡니까?"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요."

"답이 틀렸어요. 우리 일은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도울 수 있는 입장으로 이끌어주는 거예요."

그는 '자율권empower'이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았다. 자율권이라는 표현이 유행하려면 이후 몇 십년은 더 흘러야 하지만 그는 핵심을 파악하고있었다. 레프코는 변호사가 지향해야 할 가장 높은 목표는 상대방을 두들기거나 멋진 변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의뢰인이 누구든 간에 그들이 자신의 삶과 재산에 대해 스스로 결정 내릴 수 있는 자율권을 행사할 수 있게끔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라고 했다. 서민을 대리할 때나 중산층, 또는 대기업을 대리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는 법률 서비스 변호사도 다른 변호사들과 마찬가지로 의뢰인을 '돕는' 게 아니라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똑같은 의무를 가졌다고 했다.


스티븐 러벳, 정의가 곧 법이라는 그럴듯한 착각, p. 95

posted by Gruentaler
2013. 8. 5. 00:58 기억의 습작

서른, 잔치는 끝났다

                                   -  최영미 -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 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을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posted by Gruentaler
2013. 4. 18. 20:27 기억의 습작

p. 203

보수당은 말하기를 투표를 통한 다수의 결정은 종종 대중 영합주의로 흐른다며 이것은 결국 다수의 독재나 다름없다고 했습니다. 보수당은 개인의 자유를 부르짖으며 좀 더 나아가 자본과 사유재산권을 말합니다. 시장과 자본은 정치적 결정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개인의자유를 보장하는 길이고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말합니다. (...) 보수당은 민주주의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결정에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수당의 지도자는 시장이 즉 돈이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강자가 결정권을 갖는다는 뜻입니다. (...) 우리는 돈이 권력이 되고 경제력이 덕목이 되는 사회를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는 국민의 집의 주인은 시민이며, 시민이 결정권을 갖는 사회를 원합니다. (Palme 1985/08/17)


p. 214

개인의 자유를 위해 복지의 재원이 되는 세금을 낮춰 달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편에는 약자의 자유가 있습니다. 노인과 장애가 있는 이들이 집에만 앉아 있지 않고 가족과 친구를 방문하고, 자연을 누릴 수 있는 자유 말입니다. 누구의 자유가 중요할까요? 둘 중 한쪽은 10만 명의 자유를 증진시킬 수 있습니다. 만약 세금을 없애기로 한다면, 다수의 자유가 줄어들게 됩니다. 그것도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자유가 말입니다. 저는 세금을 줄여 부자들이 얻는 자유보다 그들의 자유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정신지체 아동을 위한 학교의 지원을 줄일까요? 정신지체 장애인은 아마도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겁니다. 아마 스스로의 자유에 대해 그다지 고민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도덕적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는 약자도 일정 수준 이상의 삶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세금을 많이 내는 부자에게 세금을 감면해 주고, 약자를 위한 복지를 줄이면 우리의 자유와 행복은 늘어날까요? 아닙니다 .모든 것이 자유에 대한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를 위한 자유'이며 '무엇을 위한 자유'인지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결정은 언제나 다수를 위한 더 큰 자유입니다. 실업으로부터의 자유, 근심으로부터의 자유, 가난과 질병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Palme 1985/08/17, 7: 뤼디브룩 선거 유세 연설)


p. 216

복지사회의 이념은 안전과 평등, 연대와 민주주의의 표현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경제적인 결정을 내리거나 생산성을 말할 때 이 같은 가치는 종종 한쪽으로 밀려납니다. 시장의 결정은 자본과 이윤 창출의 법칙에 따릅니다 .시장의 힘은 떄때로 개인이나 특정 집단에 잔인합니다. 

 우리가 과거에 바랐던 복지의 목표는 이제 일차적으로 달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복지사회의 가치가 일터에서는 실현되지 않고 있습니다 .사회 번영의 기지가 되는 생산 현장을 점검하지 않고는 근대적 사회 발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생산 현장에서 사람들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한 복지와 건강을 말할 수 없습니다. 비상식적 근무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평등한 대우에 관한 제도가 정착되길 바랄 수 없습니다. 일터에서 민주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데, 노동자에게 경영 참여의 길이 막혀 있는데 국민의 참여를 말할 수 없습니다 .사회적 격차는 커져만 갑니다. 생산 현장에서 기본적 가치가 실현되지 않는다면 복지사회 발전의 공약은 공허할 뿐입니다.

 이제는 눈을 넓혀야 할 때입니다. 사회 안전, 더 좋은 교육 서비스, 주거 환경, 늘어가는 여가 시간을 보장하는 복지 정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회민주주의는 소수에게 부가 집중되는 경제 구조 안에 민주주의를 심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시민으로, 노동자로, 소비자로 생산과 분배, 생산구조와 노동환경에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것입니다. (Palme, 1975/09/28)


p. 358

기존의 스웨덴 복지 모델에서 후퇴하는 일은 없다. 모든 사람은 가난해질 수 있고, 따라서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복지를 제공한다. 온 국민이 시스템의 보호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보편적 복지를 지향한다. 우파의 대표들조차 평등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이는 좌우에 상관없이 공유하는 가치다. 우리는 사민당의 주요 지지세력이던 노동자들에게 보수당 역시 노동자의 당이 될 것이라 약속했다. 복지 지출을 줄이지 않고 중도 성향의 정책을 내놓았다. 보수당이 하는 일은 노동 인센티브를 개혁하고 관리를 강화하는 것으로 작은 조정은 있으나 큰 틀을 흔드는 일은 없다. 보수당이 복지 제도를 제안했고 사민당이 실행했다. 사민당이 개혁을 시작했고 우리는 그것을 강화했다. 사민당이 그 일을 잘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훔쳐 온 것이다. (보수당 재무 차관 한스 린드블라드) 박현, 2011/05/12 "보수당 집권 뒤에도 복지모델 후퇴 안해" (한겨레)

posted by Gruentaler
2013. 4. 7. 14:53 기억의 습작

147-9

대규모 주택 건설과 개인적 주택 소유를 핵심으로 한 한국 주택정책의 특성, 정부와 재벌기업 간의 긴밀한 유착관계, 권위주의 정부가 주도한 급격한 경제성장, 정부가 통제한 주택 양산 과정이 특수한 구조, 경제성장의 국가적 목표를 뒷받침한 서울의 도시계획 등은 한국에서 아파트 단지 건설이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활발하게 전개됐던 이유를 설명해 준다. 이처럼 아파트 단지는 도시 형태의 측면에서 한국 경제의 '기적'을 낳게 한과정과, 30년에 걸친 농경토지사회에서 도시산업사회로의 급격한 이행을 반영한다. 건설 회사와 분양 희망자들에게 엄청난 이윤을 남겨준 분양가 통제제도는 이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주민들은 주택을 양산하는 도시계획 안에서 하나의 집합적 세력으로 고려되고 움직였던 존재였다. 처음에 서울 주민들은 아파트에 대한 저항세력을 형성했다. 그러나 새로운 주택 형태를 전파하기 위한 정부의 전략이 도시 역동성을 강남으로 재분배하면서 대규모로 시행되자 여론은 급선회했다.


이러한 여론의 급선회가 국가의 권위주의적 통제의 산물만은 아니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이 사회적 지위를 주장하는 방법에도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1960년대 말만 해도 하위 계층의 주택 유형으로 간주되던 아파트가 왜 점차로 도시 중산층을 대ㅛ하는 특성적 기호의 하나가 됐는가를 설명해 준다. 또한 주택 시장과 임대 시장에 각 개인의 접근 방법을 결정하는 경제적, 물질적 조건들은,어떻게 중간계급 대다수가 아파트 단지의 대규모 개발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하는 구조를 발곃준다. 결국 '아파트'는 상품이 되고, 재테크의 수단이 되었다. 권위주의 국가는 인구 성장을 관리하고 봉급생활자들이 경제 발전에 헌신하도록 가격이 통제된 아파트를 대량 공급하려 했다. 그리하여 중간계급을 대단지 아파트로 결집시키고, 이들에게 주택 소유와 자산 소득 증가라는 혜택을 주었으며 그들의 정치적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다. 결국 이러한 상호 혜택의 구조 때문에 한국의 도시 중산층과 중간계급 일반이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하층의 사회계층으로부터 공간적으로 분리될 수 있었다. 주거 공간의 획일화를 너무도 쉽게 수용하는 한국인들의 문화적 무관심은 이렇게 해서 허용되었다. 한마디로 말해 한국의 아파트 단지는 권위주의 산업화의 구조와 특성, 여기서 비롯된 계층적 차별 구조와 획일화된 문화양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이자 그 산물이라 할 수 있다.


210

전통적 원형과는 매우 달라진 아파트단지라는 공간조직과 주거 환경 안에서, 인간관계를 통해 나타나는 전통과 현대성의 문화적 구조는 어떤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나? 전체적으로 볼 때 단지 내 가족의 사회성에 대한 분석은, 그 구조와 행동 면에서 사회가 현대화됐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나 생활양식의 변화가 사적인 영역 안에서 개인 간의 고나계(부모관계, 특히 남녀 고나계)를 특징짓는 기본적인 규범을 사라지게 하지는 않았다. 반면, 아파트 단지 안에서 경비원이나 관리사무소를 매개로 행해지는 개인에 대한 통제는 전통적인 동네에서 행해지는 통제방식을 이어간 형태로 결론짓기는 어렵다. 골목길과 같이 준사유지적 공간에서 공동체적 형태로 행해지는 전통적인 방식과는 달리 아파트단지는 공적인 통제를 그 핵심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251

대단지 아파트는 도처에서 대규모 도시문제뿐 아니라 정치적 초점들을 결집시키며, 여러 형태의 감시체제를 발전시키고 있다. 대단지의 형태는 그 자체로 사회 공간적 차별화를 낳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러한 차별화를 고착화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또한 대단지 아파트는 장기적으로 관리와 유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필연적으로 그 비용을 더 즈앧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도시 형태의 견고함을 취약하게 만들어 프랑스에서처럼 쇠락의 길로 접어들거나, 한국에서처럼 일상화된 재개발의 결과를 낳는다. 주택이 유행상품처럼 취급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별로 깊이 생가갛지 않는 문제이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대단지 아파트는 서울을 오래 지속될 수 없는 하루살이 도시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posted by Gruentaler
2013. 3. 29. 08:14 기억의 습작

129

유영경과 정인홍, 그들이 북인이라는 것, 소북, 대북이라는 사실은 어느 순간에는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을지라도 한번 선택한 뒤에는 바꾸기 어려운 객관적 조건이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또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많은 경우, 공존과 연대의 붕괴는 어쩔 수 없는 조건에서라기보다 잘못된 선택에서 비롯된다.


188

제도의 역할은 지속시키는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을 지속시킬 수 있고, 가장 나쁜 것을 지속시킬 수도 있다. 지속이 좋은지 나쁜지는 그 제도가 처한 역사적 타이밍에 의해 결정된다. 경연은 군주 혼자 판단을 내릴 때 초래될지 모르는 자의성의 위험을 피하고, 현안이나 정책을 근원적인 비전 속에서 조망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적 장치였다. 그래서 하루 세 번, 몇 시간 이상 함께 논의하고 검토하는 장치를 받아들였다.


220

100년도 못 살면서 1천 년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고 또 그래야 역사의식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역사는 시공의 유한성을 넘어서는 인간의 자기 이해라고 생각하며 그러한 이유 때문에 역사의식에는 종교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유한성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역사는 각기 다른 의미를 띠고 다가올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조선 사람들은 자신의 삶은 자신과 함께 살았던 사람들, 그리고 후세 사람들이 평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업보도 아니고, 천당, 지옥도 아니다. 이 유가의 현실주의가 그들을 사로잡았고, 그래서 역사를 남겼다.


359

조선의 경우는 어떤 죽음에 해당될까? 나는 둘 다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자연사할 만큼 나이가 먹은 상태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격이랄까? 새로운 문명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서 일본제국주의의 침탈을 당한 것이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은 망국의 실제를 이해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조선의 망국을 이해하는 우리의 관념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일단 이 경우에 생겨나는 안타까움은 두 가지 방향으로 작동한다. 하나는 안으로, 하나는 밖으로, 먼저 밖으로. 일본의 침략, 나아가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비판이다. 하긴 이 선명한 비판조차도 근대화라는 망상에 빠져 호도하는 모양이다. 제국주의 침략의 부당성을 오히려 부정하고 근대화 논리에 휘둘려서 오히려 식민지의 긍정성을 부각하는 주장이 있다. 물론 통계와 실증이라는 이름으로.


360

안으로는 '빨리 망했으면', 그래서 '강대한 새 나라가 있었으면'하는 관념을 형성한다. 좀 더 빨리 망해서 사회나 나라가 바뀌고 왕조든 뭐든 정체의 전환이 이루어졌다면 식민지로 전락하는 욕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움, 애처로움의 표현이다.


그런데 이 '빨리 망했으면' 관념은 하나의 가정이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는 말은 역사가 가정이 낳을 허구에 기초하지 않고 사실에 기초해서 논의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빨리 망했으면'이라는 가정은 이미 역사학의 궤도를 이탈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어디로? 역사가 임의적일 수 있다는 데로! 거듭 말하지만, 역사에 우연은 있어도 임의성은 없다. 


조선은 망할 때가 되어 망한 것이고, 하필 그때 우연히 사고를 당한 것이다. 어떤 노인이 나이가 들고 건강이 나빠져 돌아가실 떄가 되었는데, 불행히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치자. 우리는 그때 운이 나빴다고만 말하기가 어렵다. 특히 그 망하는 당사자가 되었을 떄는 그 가정에 온갖 사념이 개입한다.


아쉬움이 원망으로, 원망이 바람으로, 바람이 다시 원망을 낳고, 원망은 다시 아쉬움으로 돌아온다. 이 사이클은 당사자의 논리로만 전개되지 않는다. 거기에 슬쩍 제국주의의 선전히 흘러 들어온다. 식민지의 곤혹은 이미 불리한 지형에 서 있는 그 자체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빨리 망했으면' 관념 자체가 이미 심각한 상처의 소산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관념은 이미 식민사관으로 범벅이 될 운명을 타고났다. 그래서 나는 '빨리 망했으면' 관념이 보이는 모든 글을 경계한다.


362

왜 하필 그때 그랬을까? 조선 사회와 인민들은 광해군 15년 동안의 시간을 '잃어버렸다'. 민생회복, 사회통합, 재정확보, 군비확충, 문화발전 등 어느 하나 제대로 이룬 것이 없이 오히려 그 반대로 흘러갔다.그 15년을 잃지 않았다면, 동아시아 판도는 달라졌을 것이다. 중원의 판도까지 좌우할 수는 없더라도 동아시아 외교에서 발휘할 수 있는 주체적 운신의 폭은 넓었을 것이다.


조선 사람들이 임진왜란의 경험을 허투루 버려두지도 않았을 것이며, 사회 안정과 생산력 제고는 자강의 질과 수준을 높였을 것이다. 사림의 헌신적인 리더십과 인민들의 발랄한 생활력이 만나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문화를 아름답게 꽃피웠을 것이다.


광해군 때 잃어버린 15년의 나라 꼴을 회복하는 데, 침략 전쟁 두번을 포함하여 인조, 효종 연간 30년 이상이 걸렸다.


인조반정 이후 사람들은 다시 삶을 시작하고 있었다. 반정은 그들이 선택한 행위이기도 했지만,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그러므로 선택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었든 그들은 다시 농사를 지어야 했고, 바닥 난 재정을 긁어모아 나라를 운영해야 했으며, 후세를 낳고 기르고 가르쳐야 했다.


무너진 사회의 기강을 세워 그래도 좀 더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야 했으며,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어야 했다. 그러다가 미처 여력이 없던 차에 닥친 침략에 허둥대기도 하고 답답하여 죽고 싶기도 했다가, 다시 일어서 하루하루 이 땅에서의 삶을 이어갔을 것이다. 지금, 우리처럼.



posted by Gruentaler
2013. 2. 5.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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