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Gruentaler
길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발길을 멈추고 주저앉고 말면 우리 삶은 거기서 끝나게 됨이라 - 이청준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타인의 시선'에 해당되는 글 9

  1. 2013.11.16 Berlin D+52
  2. 2013.11.14 Berlin D+50
  3. 2009.09.13 당신의 괴테, 나의 괴테, 우리의 괴테 : 반복과 기억, 상징화2
  4. 2009.09.03 독일 선거 포스터4
  5. 2009.08.27 바이마르2
  6. 2009.08.01 studiVZ4
  7. 2009.07.31 다시 찾은 뮌헨2
  8. 2009.07.20 근황6
  9. 2008.02.20 등록금
2013. 11. 16. 01:16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2013. 11. 14. 06:08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2009. 9. 13. 01:17 타인의 시선

 일단 이 거창한 제목 하의 허접한 글에 대해 먼저 설명을 해보련다. 바이마르 문학 코스 마지막 수업 때 다소 반강제적인 성격을 띤 "창조적이고" 자발적인 자율발표가 있었다. 지난해에 참여했던 선배들 말로는 안해도 되고, 따로 준비할 시간도 여유도 없으니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굳이 나설 필요도 없다고 해서 그말을 충실히 따라 안할 생각이었으나, 수업시간 내내 한마디도 안했던 관계로, 마지막날 그래도 뭔가는 해야 하지 않겠냐 하는 강박관념이 나를 엄습했다. 그런데 마침 K씨가 발표를 준비한다길래 말그대로 밥상에 숟가락 올려놓는 심정으로 같이 하자고 했다. 하지만 막상 같이 한다고 해도 딱히 주제는 떠오르지 않고, 그러다 부헨발트 수용소에 다녀왔을 때 인상을 K가 했었는데(그 내용에 대해서는 바로 아래 포스팅을 참고하시라), 그것이 모티브가 되어 아래와 같은 글을 썼다. 본인의 지도교수님만큼이나 역사와 기억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없을 뿐더러(관심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분량이나 독어로 얘기해야 한다는 여러 조건 때문에 제대로 말을 했는지 모르겠고, 그래서 나와 K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됐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한글 텍스트는 내가 썼다. 이걸 독어로 K가 거의 번역하고, 나는 옆에서 깔짝대며 도와줬다. K는 실제로 번역한 책도 있고, 전문 번역교육도 받고 있을 뿐더러 독문과 A선생님으로부터 '번역가 양반'이라는 소리까지 들었으니, 저는 그저 거들 뿐이랍니다. 그리고 그걸 독일인 친구가 다시 고쳐주고. 독어로 옮기는 과정에서부터 복잡한 (헛)소리들은 많이 생략이 됐으니, 사실 '원문'인 국문 텍스트와 '번역문'인 독일어 텍스트는 별개의 텍스트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도 싶다. 

 제목에 대해서 한마디 하자면 나는 괴테에 대한 언급이 별로 없어서 괴테 대신 바이마르로 고치는게 낫지 않겠냐고 얘기했지만, 이래저래 그냥 괴테로 내버려뒀다. 꼭 이걸 발표한 날이 괴테 생일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반면에 K는 민족주의 얘기를 좀 더 하고 싶어했지만, 웬지 뜬금없이 민족주의 얘기를 하는 것 같아서 (공감하는 내용이긴 했지만 그러면 분량이 많아지는 것도 솔직히 나에게는 조금 부담이었다.) 그 내용도 빠졌다.

 그나저나 원문이 어딘가 연설문 같은 느낌이 났다면, 그건 내가 한동안 <웨스트 윙>에 빠져 지내서 그런 것일지도...

====

당신의 괴테, 나의 괴테, 우리의 괴테 : 반복과 기억, 상징화


  이곳 바이마르에 대해 사람들은 다양한 기억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괴테와 쉴러를 비롯하여 바이마르 공화국이 시작된 장소이지만 동시에 그 끝이 시작된 장소이기도 하며, 이후에는 집단수용소가 자리 잡았습니다. 이 기억들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중첩되어 있고 그만큼 더 복잡한 모습으로 기억됩니다.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외부인의 시각에서 보면 독일은 좋은 과거와 부끄러운 과거 모두 비교적 종합적으로 잘 기억하고자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반복적인 교육을 통해 기억을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특히 가해자로서 어두운 역사를 최대한 언급하지 않으려는 일본과 반대되는 독일의 태도는 한국인의 시각에서 흔히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반복적인 교육이 반성 없이 그저 반복되는 수준에서 그치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세대가 지나면서 과거에 대한 무관심이 늘어나는 것은 역사 교육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성찰 없이 ‘너무 많이 가르쳐서’가 아닐까요? 그리고 때로는 무관심을 넘어서 심지어 이에 대한 반발심으로 극단적인 방향으로 선회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독일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일제치하, 한국전쟁, 근대화, 군사독재와 같은 많은 과거에 대해 동일한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또 이것은 비슷한 과거를 경험한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독일의 어두운 사례만을 주로 이야기했지만, 이것은 괴테와 쉴러, 바이마르 공화국과 같은 사항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찰 없는 찬양은 하나의 우상을 만들어 온전한 평가를 불가능하게 할 수 있습니다. ‘세계시민’인 괴테가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시민이 아니라,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세계적인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결국 기억의 문제는 ‘과거에 어떠한 일이 일어났다“라는 사실만을 반복하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기억해야하는가“하는 보다 진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항상 바뀌는 것이고, 그 기억을 보다 올바르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수용하는 우리들의 몫입니다.

=========

Dein Goethe, Mein Goethe, Unser Goethe:

Wiederholung, Erinnerung und Symbolisierung


  Zwei Wochen in Weimar! Wir sind zwei Wochen lang vielen Spuren von Goethe und Schiller gefolgt, die sich als Weimarer Klassizismus definieren und auf der anderen Seite den dunklen Spuren vom Nationalsozialismus in Buchenwald begegnen. Und die beiden Unterschiedlichen Geschichten Weimars stehen in verschiedenen Weisen zusammen vor uns.


 Es ist nicht einfach zu definieren, wie die Deutschen diese zwei Seiten behandeln. Aber unseren kurzen Blick nach scheint es so, dass die Deutschen sich darum bemühen, die „gute„ und „schändliche„ Seite von eigener Vergangenheit gut zu erinnern. Wir schätzen es ganz hoch, denn es ist einfach schwer seine eigene dunkle Vergangenheit selbst zu verurteilen und zu versuchen, sie nicht zu vergessen. Das ist ganz merkwürdig für uns, Koreaner, weil Japan im Gegenteil ablehnt, die öffentliche Verzeihung zu äußern. Wir zollen den Deutsche große Respekt dafür wie sie ihre Vergangenheit ergeizig behandeln.

 
 Aber einerseits haben wir Sorge. Wenn dieser Prozess die „Gute„ und „schädliche„ Vergangenheit zu erinnern, sich nur wiederholt, würde es kein Sinn machen. Einfache, mechanische Wiederholung ohne Reflexion könnte ein Problem sein. Diese „Wiederholung„ könnte der einen Seite Weimarer Klassikers zur Vergötterung führen, oder auf der anderen Seite „einfache Unterdrückung„ in Namen der „Gerechtigkiet„ den Leuten vermitteln und dadurch wieder extremen nationalismus hervorrufen, ohne Verständniss. Es ist nicht nur das Problem des Deutschen, sondern auch unser Problem in Korea. Wir haben ein ähnliches Problem. Die Erinnerung an die Vergangenheit spielt eine starke Rolle und zwar lernt man schon viel in der Schule über die Vergangenheit der letzten Hundertjahre und wir schauen die Geschichte mit dem Blick eines Opfers an, und ohne dass man es reflextiert. Kein Land ist frei von diesem Problem.

 
 Wir wollen uns nicht fragen: „Was geschah damals in der Vergangenheit?„ Sondern, „Was und Wie würden wir uns als heutige Lebende an die Vergangenheit erinnern?„ Da braucht man ernste Reflexion!

 
 Zum Geburtstang Goethes, möchten wir gerne sagen : Goethe ist ein Weltbürger geworden. Goethes Name stehet nicht nur für die Deutschen, sondern auch für kosmopolistische Humanität. Man muß sich darum bemühen.

==================
 그래서 발표는 무사히 마쳤고, 반응은 그럭저럭 호응을 받은 듯. '창조적 발표'가 수업 제목이었는데, 글을 교정해주던 독일 친구로부터 '창조적'이라는 소리를 들었으니, 그거 하나만으로도 어느정도는 체면치레는 한게 아닌가 싶고. 혹시 글 쓴걸 줄 수 있겠냐(딱히 잘써서 그랬다기 보다는 내가 잘 못읽어서 그런 것 같다는 느낌이......)는 부탁까지 들었으니, 나쁘지는 않았던듯.

 다만 가장 큰 문제였던 것은,

 이렇게 좋은 날씨와 자유로운 분위기(참고로 가장 편한 자세로 반쯤 누워있는 두 사람이 선생님들이셨음)에서 하기엔 약간 부담스러운 주제의 이야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

posted by Gruentaler
2009. 9. 3. 02:28 타인의 시선
 지난달 마지막 독일에서는 작센, 튀링엔, 자란트 세 주에서 지방의회선거가 있었다. 한달 반동안 작센주와 튀링엔 주에 있었으니 다양한 선거포스터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눈길을 끌었던 것은 극우정당인 독일민족당의 포스터. 앞선 포스팅에서도 말했었지만 외국인의 관점에서는 (뿐만 아니라 독일인에게도 마찬가지로) 섬뜩한 주장들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비웃음을 동반한 재치나 위트가 더해진, ('포장된'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그런 인상이었다.
<독일인들을 위한 일자리(작센주)>
<일자리는 독일인들에게 최우선으로>
<튀링엔에는 우파가 필요합니다(튀링엔 주)>
--- 처음에 '권리'라 생각했으나 '우익'이 맞지 않겠냐는 강성운의 지적에 따라 수정.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독일민족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라면 '권리'로 해석하는 것도 틀리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 해본다.
<조국(fatherland), 모국어(mother language)는 아이의 행복>
<(외국인은) 이민 입국 대신 집으로가는 여행을!>
<진짜 튀링엔(소세지) VS
가짜 튀링엔인(사진속의 인물이 누군가 했는데 튀링엔 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민련(CDU) 정치가라고 한다.)>
<튀링엔주 독일민족당 후보 포스터>
독일은 비례대표가 지역구대표만큼이나 많다보니 우리나라처럼 후보 포스터 일색이 아니라 정책을 주로 담은 포스터도 후보 포스터 못지 않게 많은데, 극우정당은 자기네 스스로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다른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후보 포스터는 하나도 못봤는데, 돌아오기 이틀전에 딱 하나 발견했다. 멀쩡하게 생긴 동네 아저씨같은 사람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후보로 출마했다는 사실에 "겉모습만 봐서는 알 수 없다"라는 옛날 말씀이 새삼 떠오른다........지만 한편으론 사견이지만 "용자"인것 같기도 하다.
 
 
물론 그렇다고 독일 사람들이 이 사람들이 선거운동 하는걸 가만히 내버려둘소냐, (물론 작센주는 다른 주들에 비해서 눈에 띄게 이 정당 지지율이 꽤나 높은편(6%)이긴 하지만...) 물론 아니올시다.

<갖다 버리세요! 잊어서는 안됩니다 : 휴가전에 갈색 사과들은 버려야합니다.(동맹90/녹색당 포스터)>
 갈색이 옛 민족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의 상징이었던 것을 이용한 반 독일민족당 홍보 포스터.
 
하지만 보다 행동으로 이렇게 하는 사람도 있다.
<구직사무소 대신 미래를!>
<관광객은 환영하지만, 범죄자 외국인은 꺼져라!>...를 외치다 산산히 부서진 이름 포스터가 되겠다.
하지만 누가 봐도 '외국인은 꺼져라(Auslaender Raus!)'가 가장 먼저 한 눈에 들어온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나저나 '관광객'과 '범죄자 외국인'은 어떻게 구별할거임? 국경이나 공항에서 뱃지라도 나눠주실려고? EU가맹국에서 온 사람들은 구별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옆에 반쯤 나오다 만 포스터에는 '범죄에는 강력한 처벌을!'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유난히 NPD 포스터들이 이런 수난을 겪었지만, 다른 정당 포스터들도 종종 이런 수난을 겪는다. 선거포스터를 훼손하는 일에 대해 제법 엄격한 처벌을 가하는 한국과는 다른 모습. 선거포스터도 훨씬 더 많이 곳곳에 붙여져 있는 것도 같고.)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89년 통일 때 구호를 이용하였으나, 여기에 누군가가 단어를 덧붙여서 <우리는 (특정)민족을 증오하는 집단!>이라는 말로 바꾸었다.


아래는 다른 정당 포스터들.
<튀링엔 주 동맹90/녹색당 선거 포스터>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학기 교통권을 무료로 하고 적용범위도 늘리겠다는 공약이 담겨있다. 심슨 캐릭터화한 후보 모습도 보이고. 이런 공약을 한국에서 내세운다면 그야말로 '포퓰리즘'이니 '선심성'공약으로 매도당할 수도 있겠지만(반값 등록금? 이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 이 나라는 이미 이런게 워낙 보편화되어 있는 동네니..
<튀링엔 주 기민련 선거 포스터> 전직 주지사 알트하우스. 알트하우스는 최근에 스키를 타다가 한 여성과 부딪혀 사고를 당했고, 부딪힌 여성은 사망했다. 이 일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민련은 지난 선거와 마찬가지로 지지율 1위를 차지하였으나 과반수에 미치지 못했고, 2등과 3등을 한 좌익당(Die Linke)와 사민당(SPD)이 연정을 이루어 새 주정부를 구성하게 되었다.
 좌익당 포스터 한켠에 붙여져 있는 스티커. 투표를 하지말고 직접 정치에 참여하여 직접민주주의를 이루자는 내용이다.
<해적당> 포스터
<동물보호당> 포스터. 어딘가 모르게 어설픈 합성으로 만든 것 같다.


 작센주 주도인 드레스덴에서 NPD 포스터를 재미있게(?) 구경하고 바이마르에 왔을 때, 한동안 NPD의 포스터를 못봤다. 그래서 심심(?)하던 차에, 부헨발트 수용소를 둘러보고 돌아오면서 중앙역에 꽤나 도배되어있는 NPD 포스터를 보고 반가운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었다. 다음날 수업시간에 이 포스터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선생님 말씀 : "역사수업 선생님이 부헨발트에서 인종주의나 극우주의에 대해 대단히 중요하고 심각한 얘기를 많이 했고, 나도 다시한번 반성하고 느낀게 많은 자리였다. 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바이마르에 도착했는데, 제일 먼저 본 것이 하필이면 이 포스터였고, 외국 학생들이 저게 뭐냐고 물어볼 때 나는 오늘 하루종일 뭐했나 하는 생각까지 들어서 얼굴을 위로 들어서 쳐다볼 수 조차 없었다"

 한편으론 그렇게 말 잘하고 토론하는 것을 좋아하는 독일 학생들이 여기에서는 단 한마디 말을 하지 않았는데. 같이 온 친구 K는 이것이 진정한 반성에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외면인지, 그 외면이 부끄러워서인지, 혹은 학창시절 내내 들어왔던 이야기라서 약간은 지겨운 마음에 그랬던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의 생각은 마지막날 수업 때 자유발표 시간을 통해 발표가 된다. --- 그리고 나는 이 발표에서 숟가락만 올려놓았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또 포스팅할 일이 있을 것이다.
posted by Gruentaler
2009. 8. 27. 20:45 타인의 시선
 16일 드레스덴을 떠나 바이마르에 도착했다. 2주 동안 문학 세미나에 참가했었다. 수업은 오전 세 시간 오후 두 시간 가량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저녁 먹기전에 시내 박물관이나 명소를 투어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저녁 먹고나서도 일정이 있다. 거기다 숙소와 강의실은 바로 옆 건물이니 며칠 생활하다보니 어느 순간에 중고등학교적 수련회에 온 기분이 들었다.
 
 수업을 들으면서 같이 온 형한테 "덕분에 벌써 개강한것 같아요"했더니 "오히려 개강했으면 하루에 세시간 수업듣고 사람들이랑 편히 밥먹으니까 이렇게 힘들지는 않겠지"라는 대답을 들었을 정도니까, 아무튼 자처해서 한 일이긴 하지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도 독일 오기 전에 세미나에서 다룰 작품들을 번역본으로 읽고 독일에 있는동안 원문 쭉 읽으면 되겠지, 했었는데 그냥 쭉 읽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번역본은 그렇다 쳐도 원문은 그나마도 다 읽지도 못했다.) 비교적 짧은 텍스트들은 상관이 없지만 분량이 많은 텍스트들의 경우 개괄적인 부분은 간략히 다루고 중요한 몇몇 장면들만 골라내서 몇 시간동안 토론하는 스타일이라, 대충 내용만 확인하고 수업에 들어온 나로서는 고생을 안할 수가 없는 상황. 수업 진행방식이 이래저래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번번히 엇갈려서 낭패도 여러번 봤다. 아무튼 덕분에 모처럼 또 헬렌 켈러가 된 기분이었다.

 거기다 세미나도 문제지만, 그 이후의 각종 일정들이 이상하게 놀자고 하는 것 같은데 세미나 이상으로 힘들다. 
혼자돌아다니면 한 시간 안에 다 둘러보고 나올 박물관들을 두시간 넘게 돌아다니면서 설명듣고 구경하려고 하니 무척 충실한 관람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외국어를 집중해서 몇 시간 동안 (수업 끝나고) 또 들으려고 하니 피로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거기다 하루는 옆동네 가서 괴테와 관련된 박물관을 6개나 둘러보고, 또 뜻하지 않게 해부학실까지 둘러보기도 했었는데 그때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듯.(뭔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그대로 하얀색으로 덮여진 그 무엇인가들을 꽤나 많이 봤다.) 결국 이런 일정이 매일이다보니, 심지어 독일답지 않게 주말에도 자유시간이라고는 반나절씩 밖에 없고, 그래서 그냥 수업 듣기에는 부족한걸 알면서도, 부족한 것을 보충할 시간조차도 주어지지 않았다. (사실 그냥 쉬고 싶은데 쉴 시간조차도 없었다,고 말하는게 더 맞는 말일지도.)

 아무튼, 대강의 일정은 끝났고 내일 마무리 차원에서 하는 자발적인 발표 수업들을 마치고 토요일 저녁에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게 된다. 그러고보니 금요일이 괴테 생일이라 여기저기서 뭔가 볼거리가 많을 것 같기도 한데, 세미나를 들으면서 잠깐 관심을 가졌던 괴테와 쉴러를 다시 싫어하기 시작했으니 이젠 상관 없지 뭐. 그리고 이틀 뒤면 개강이고, 거기다 바로 TA일정까지 잡혀서 아침에 학교를 가야하고, 나는 아직 시차적응을 하지 못했을 테고.... 내 방학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이란 말인가?

 p.s. : 다음 포스팅 예고 - 독일에서는 8월 말, 9월 말에 각각 지방선거와 총선거가 실시될 예정이다. 거리 곳곳에 선거포스터도 붙어있는데... 겁나지만 어딘가 우습고 키치적인 면도 있으면서 또 어딘가 위트도 있는 것 같은 극우정당인 독일민족당(NPD)의 선거포스터들을 모아서 올려볼 예정이다. 귀국하기 전에 하고 싶긴 한데, 우선 카메라 안에 있는 사진들을 정리해야하고, 여기 인터넷이 드레스덴 때만큼은 편하지 않아서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정리해서 올릴 예정임. 이거 올리고 비웃는다고 NPD형님들이 쫓아와서 외국인 빨리 꺼지라고 때리지는 않겠지..

p.s : 글을 다시 읽어보니 뭔가 좀 묘하게 운율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어색해서 좀 고쳤다. 그래도 좀 어색한 것 같다. 그리고 괴테 생일은 지난주 토요일(29일)이 아니라 금요일(28일)이었다. 뒤늦게 수정했다.
posted by Gruentaler
2009. 8. 1. 02:26 타인의 시선

 알 사람은 다 알겠지만, studiVZ라는게 있다. 독일판 페이스북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물론 페이스북도 그렇고, 이것도 우리네 싸이월드 못지 않게 허접하지만, 그럭저럭 그 동네에서는 인기있는 사이트이기도 한 듯 하다. 학교나 수강하는 수업을 선택하면 그것에 맞게 그룹도 설정해주기 때문에, 여러모로 쓸모 있어 보이기도 하고. 거기다 가뜩이나 얼굴이랑 이름 맞춰서 외우지 못하는데 외국인들이다보니 그 어려움은 더했는데, 이것 덕을 좀 봤던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이렇게 말은 해도, 이런게 있다는 것을 교환학생 생활을 마무리할 때가 되어서야 알았기 때문에, 아마 거의 시작하자마자 한국으로 돌아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연히 돌아온 이후에는 한번도 접속한 적이 없었다. 사실, 해볼까 싶기도 했지만, 워낙에 1년 가까이 생활하면서 여러모로 도움 줬던 사람들에게 아무런 얘기도 없이 (쓸데없이 마음만) 황망하게(?) 돌아와버린 것이 왠지 마음에 걸려서 그러지를 못했었다.

 그러다 오늘 용기(?)를 내서 들어갔는데, 뮌헨에서 알고 지내던 친구가 작년 생일에 방명록을 남겼었다. 여기 들어와서 이걸 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생일 축하한다고. 일부러 맞춘건 물론 아니지만, 곧 올해 생일도 다가오니 괜히 찔린다거나 더 미안한 느낌도 들고 있다. 

 그래도 '답방'을 해서 미안함과 감사함을 전해서, 일단 한 명분의 짐은 덜은 것 같다. 이 참에 한번 못한 과거 청산을 해볼까도 싶지만, 왠지 그러기에도 조금 늦어버린게 아닌가 싶기도 해서 조금은 머뭇거려진다.
 
posted by Gruentaler
2009. 7. 31. 04:57 타인의 시선

 지난주 주말에 잠시 다시 뮌헨에 갔었다. 드레스덴에 도착한 첫 주라 현지 적응(?)차 드레스덴에 머물려고 했었다. 하지만 뮌헨에서 신세를 지기로 한 교환학생 윤모씨가 다음주 수요일, 다시말해 어제 귀국을 해야 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갔다왔었다.
 
 학교 골목. 왼쪽 건물이 문학부 건물이다. 10분정도 쭉 걸어가면 살던 기숙사가 나온다. 


기숙사 골목 모퉁이에 있던 낙서. 내가 돌아오기 직전에 만들어진 낙서인데, 의외로 아직까지 있다. 알고보니 건물 주인이 무정부주의자라던가 그런 것은 설마...

r
기숙사 반대편 골목.

오데온 광장에서 바라본 하늘. 맑은 구름에 하늘도 푸른 빛이지만 이날 날씨는 말그대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심지어 우박까지 쏟아졌으니... 호랑이가 장가를 가도 열번은 간 날이었던 듯.

 주 목적이 '알고 지내던 사람들 만나기'였으니 만큼 만났던 사람들하고 사진도 많이 찍었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기껏 일요일에 시간내서 교회도 갔는데, 친하게 지내던 분들과 얘기도 많이 못했다. 거기다 의도한건 아니지만 독일 외유 덕에 최근 초중고 동창들의 미칠듯한 결혼 소식(혹은 식장 참석)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여기서도 동갑내기 자매님의 결혼 소식을 들어서 약간 당황하기도 했었던 듯. 사실 당황할 이유야 없지만서도.
posted by Gruentaler
2009. 7. 20. 08:55 타인의 시선

 1. 독일에 잘 떨어졌음.  첫날 며칠은 한국처럼 비오기 직전마냥 습하고 무더웠는데 그래도 비가 조금 오니까 날씨가 급쌀쌀해졌다. 이런 날씨를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음. 다만 며칠 머물렀던 분과 동행한 분이 주변 사람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정도로 까칠한 사람들이라 두 사람은 전혀 눈치나 압박을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괜시리 불편했다.

 2. 앞으로 한달 동안 머물 드레스덴에는 오늘(19일) 오후에 도착했다. 생각보다는 도심에서 약간 멀리 떨어져있지만 기숙사 시설은 상상외로(사실 솔직히 말해서 별로 기대는 안했다) 좋은것 같아서 또 쾌재를 불렀다.
  도착한 기념(?)으로 엘베강변에서 야외 영화 상영회가 있다고 해서 동행한 선배와 같이 갔는데, 한국의 여름날씨처럼 생각하고 나는 긴팔 셔츠, 같이 간 선배는 반팔셔츠로 가서 낭패를 봤다. 영화는 9시반(실제로는 광고때문에 10시에 시작), 우리는 8시에 도착해서 강바람 맞아가며 계속 벌벌떨었다. 영화는 3년 전에 개봉했었다는 <부덴브로크>였는데, 나중에 점점 추워지다보니 속으로 '빨리 다 죽고 부덴브로크가문 망해버려라'하는 생각까지 했었다.(뒤늦은 추가 - 실제로 소설에서도 가문의 대가 끊김) 근데 실제로 막판가서는 왠지 거침없이 죽어야할 사람들을 순식간에 다 죽여버리고 급 마무리한 듯.



 3. 가능하다면 근황을 겸해서 하루에 한장씩 사진을 올릴 생각임. 아래 사진은 지난 금요일에 갔었던 한 뮌덴(Hann. Muenden)에서 찍은 사진임.
posted by Gruentaler
2008. 2. 20. 03:01 타인의 시선
 독일은 재작년부터인가 언제쯤부터인가 '학비 무료'가 위헌판결이 난 관계로 주에 따라서 등록금을 받는 곳이 있고 그래도 아직 받지 않는 곳이 있다. 물론 후자는 베를린이나 브레멘같이 사민당이 전통적인 강세인 지역이 해당되고(여담이지만 히틀러가 권력장악 과정에서 최대 고민거리 중의 하나는 사민당의 텃밭이었던 수도 베를린에서 어떻게 지지를 받는가였고, 브레멘은 끝까지 버텨서 히틀러가 결국에는 한번도 갈 수가 없었던 도시가 되었다고 한다.) 등록금을 받는 곳이라도 주에따라 규정학기를 초과한 사람만 낸다거나 4학기째부터, 혹은 복수전공을 시작할때부터 낸다는 식으로 천차만별이다. 물론 바이에른은 첫학기부터 500유로를 학비로 낸다. 사실 재정적으로 베를린같은 곳보다 여유가 있을 법한 주인데도 이렇게 처음부터 세게나가는게 약간은 이해가 안되기도 하지만 보수적인 동네 정서상 그런가보다 해야지 뭐.. 아무튼 한번 걷기 시작하면 안 걷을 수가 없고, 한번 걷기 시작하면 물가상승률이든 어떠한 이유를 가져다 붙여서 결국은 주기적으로 오르게 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는 나로서는 결국은 아직은 한국에 비해서 학비가 매우 저렴해도 결국은 더 오르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학원 수업에서 다룬 주제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대학의 등록금인데, 각 나라별 등록금들을 비교해 보자고 해서 한번 내기준으로 유로화로 환산하니까 1년에 국립대 3000유로, 사립대 6000유로정도가 나왔고 (물론 가장 돈안들고 투자도 없는 인문학계열이니 최대치가 아니라 최소치가 되겠지) 이 사실을 얘기하니 모두가 놀랐다. 이왕 놀래킨거 사립대 의대도 한번 가르쳐줄까 해봤지만, 그랬다간 수업이 모두 쓰러져 실려나갈까봐 걱정되서 하지는 못했고. 아무튼 사립대야 그렇다쳐도 국립대는 국립대인데 왜 그러냐고. 속으론 나도 궁금하다라고 대답을 해주고 싶었지만 국립대라해도 한국은 대학교육에 충분한 재정을 뒷받침해주지를 못하고 있다고 대답을 했지만... 역시나 우울했다. 비슷한 시스템인 일본보다도 비싼 상황이고, 우리나라보다 잘사는 나라는 잘 사는 대로, 못사는 나라는 못사는 대로 학비가 저렴한 편이니, 내가 다 민망할 정도였다. (이탈리아 학생들이 자기네 상황을 얘기해줬는데, 소득차에 따라 등록금이 차이가 있다고 한다. 물론 방법론상으로는 가장 현실과 이상이 부합되지만 얘네들도 사람이니 모두 어떻게든 등록금을 적게내는 방법에 몰두하고 있어서 그 나름대로 문제라고는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때 새 정부 교육부 장관으로 이름이 올랐던 어느 '명품' 대학 전총장님께서는 실컷 올려놓고서도 등록금이 모자르다는 소리나 하고 있고, 눈이 작아도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는 새 대통령님께서는 '공부해서 장학금 받으라'는 소리나 하시고 있으니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라고 말씀하신 어느나라 처형된 왕비님이 생각나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이제는 입학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고, 어쩔수 없이 입학했다면 닥치고 빨리 졸업하는게 차선이 되어버린 시대가 온 것일까. 대운하같은 말도 안되는 뻘짓거리에 돈을 그렇게도 쓰고 싶으면 소위 말하는 그 '국운'을 위해서라도 대학교에 돈을 주는게 낫지 않을까.


------라고 투덜대는 것에는 규정학기 초과자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필요한 이수학점때문에 등록금 절감의 효과를 전혀보지도 못했고, 규정학기 초과자가 된 '덕분에' 그 흔한 수업료 면제 조차도 되지 않아 드디어(?) 실질적인 200만원 대에 돌입했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posted by Gruentaler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