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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발길을 멈추고 주저앉고 말면 우리 삶은 거기서 끝나게 됨이라 - 이청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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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단을 주제로 한 영화는 많지만, 송강호는 분단과 관련된 영화에 유난히 많이 나온 것 같다. 물론 송강호 본인이 출연한 영화도 많기 때문에 확률 통계상으로 당연한(?)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송강호 못지 않게 '분단 영화'(라는 장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에 흔적을 남긴 배우가 더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짧은 영화편력으로는 송강호만큼이나 분단영화와 관련되서 생각나는 배우는 없다. 최근 나온 "의형제"는 "쉬리"와 "JSA"에 이어 세번째인데, (굳이 하나를 더하자면 "효자동 이발사"도 포함 될 수 있겠다.) 앞선 두 영화와 영화가 상영된 시기를 생각해보면 확실히 촬영당시의 관점 내지 사회적 분위기가 적지않게 반영된 것 같다. "서울 불바다" 발언이 나왔을때 쯤해서 북한의 대남 테러를 주제로 한 "쉬리"가 나왔고, 남북공동정상회담이 성사된 즈음에 "JSA"가 나왔으니 말이다.

 그럼 의형제는? 물론 뉴스를 통해서 6.15 남북정상회담과 북한의 핵실험이라는 시대적 상황(그리고 이 두 사건은 영화 전개의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이 드러나긴 한다. 하지만 앞의 두 영화들에 비해서는 현실의 어떤 모습이 뚜렷하게 나타나는것 같지는 않다. 송지원(강동원 분)은 북한 정부에 어느 정도 믿음을 갖고 있긴 하지만, 진짜 체제에 대한 신뢰라기 보다는 일종의 '의리'에서 그런 것이고, 이러한 믿음은 이한규(송강호 분)에서는 더더욱 희박하게 드러난다. 국정원에서 방첩활동을 하지만, 업무에 대한 자세와 불평불만은 투철한 대북관이나 국가관, 공적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말그대로 평범한 샐러리맨의 영업활동과 별 다를바 없어 보인다. 오히려 이 두 사람은 체제나 사상보다는 북에 남겨둔 가족 때문에, 혹은 "양육비" 때문에 활동하는 '생계형' 인간들이고, 조금 더 과장해서 말하면 지극히 '자본주의적' 인간들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들에게 국가보다는 가정이 훨씬 더 최우선인 점은 집나간 외국인 여성들을 잡아 집으로 돌려보내는 모습이 테러/첩보활동 이상으로 나타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결국 분단에 대한 시각은 90년대 '불바다'와 2000년대 초반 '우정'을 거쳐서 2010년에는 '무관심'으로 대체된 것은 아닐까 싶다. 남북 정상이 만나든, 북한이 핵실험을 하든 내 가족을 먹여 살리고 함께할 수 있으면 되는 일 아니냐, 하는 생각 말이다. 어쩌면 이 '무관심'을 남북이 모두 갖게 되면 그럼 그 나름대로 또 새로운 국면을 (적어도 영화에서는) 시사하는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문득 해봤다. 하지만 최근의 사건이나 동향들을 살펴보았을 때 북한은 여전히 관심을 얻고자 부던히 애를 쓰는 것 같아 그 무관심이 일방향적인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이러다 '쉬리'와 비슷한 영화가 다시 나올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너무 앞서 나간 것 같아 그만두었다.


p.s : "쉬리"와 "JSA" 두 영화을 그때 남북관계의 반영물로 바라본 글을 이전에 봤었다. 영화를 보다가 생각나서 조금 더 연장을 시켜봤던 것이고. 씨네꼼에 활동하던 모씨께서 스누나우에 썼던 글로 기억한다. 대학도 입학하기전에 봤던 글이라, 유감스럽게도 그 이상은 출처를 밝힐수도, 확인할 수도 없다.
posted by Gruenta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