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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발길을 멈추고 주저앉고 말면 우리 삶은 거기서 끝나게 됨이라 - 이청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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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9. 13. 01:17 타인의 시선

 일단 이 거창한 제목 하의 허접한 글에 대해 먼저 설명을 해보련다. 바이마르 문학 코스 마지막 수업 때 다소 반강제적인 성격을 띤 "창조적이고" 자발적인 자율발표가 있었다. 지난해에 참여했던 선배들 말로는 안해도 되고, 따로 준비할 시간도 여유도 없으니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굳이 나설 필요도 없다고 해서 그말을 충실히 따라 안할 생각이었으나, 수업시간 내내 한마디도 안했던 관계로, 마지막날 그래도 뭔가는 해야 하지 않겠냐 하는 강박관념이 나를 엄습했다. 그런데 마침 K씨가 발표를 준비한다길래 말그대로 밥상에 숟가락 올려놓는 심정으로 같이 하자고 했다. 하지만 막상 같이 한다고 해도 딱히 주제는 떠오르지 않고, 그러다 부헨발트 수용소에 다녀왔을 때 인상을 K가 했었는데(그 내용에 대해서는 바로 아래 포스팅을 참고하시라), 그것이 모티브가 되어 아래와 같은 글을 썼다. 본인의 지도교수님만큼이나 역사와 기억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없을 뿐더러(관심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분량이나 독어로 얘기해야 한다는 여러 조건 때문에 제대로 말을 했는지 모르겠고, 그래서 나와 K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됐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한글 텍스트는 내가 썼다. 이걸 독어로 K가 거의 번역하고, 나는 옆에서 깔짝대며 도와줬다. K는 실제로 번역한 책도 있고, 전문 번역교육도 받고 있을 뿐더러 독문과 A선생님으로부터 '번역가 양반'이라는 소리까지 들었으니, 저는 그저 거들 뿐이랍니다. 그리고 그걸 독일인 친구가 다시 고쳐주고. 독어로 옮기는 과정에서부터 복잡한 (헛)소리들은 많이 생략이 됐으니, 사실 '원문'인 국문 텍스트와 '번역문'인 독일어 텍스트는 별개의 텍스트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도 싶다. 

 제목에 대해서 한마디 하자면 나는 괴테에 대한 언급이 별로 없어서 괴테 대신 바이마르로 고치는게 낫지 않겠냐고 얘기했지만, 이래저래 그냥 괴테로 내버려뒀다. 꼭 이걸 발표한 날이 괴테 생일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반면에 K는 민족주의 얘기를 좀 더 하고 싶어했지만, 웬지 뜬금없이 민족주의 얘기를 하는 것 같아서 (공감하는 내용이긴 했지만 그러면 분량이 많아지는 것도 솔직히 나에게는 조금 부담이었다.) 그 내용도 빠졌다.

 그나저나 원문이 어딘가 연설문 같은 느낌이 났다면, 그건 내가 한동안 <웨스트 윙>에 빠져 지내서 그런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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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괴테, 나의 괴테, 우리의 괴테 : 반복과 기억, 상징화


  이곳 바이마르에 대해 사람들은 다양한 기억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괴테와 쉴러를 비롯하여 바이마르 공화국이 시작된 장소이지만 동시에 그 끝이 시작된 장소이기도 하며, 이후에는 집단수용소가 자리 잡았습니다. 이 기억들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중첩되어 있고 그만큼 더 복잡한 모습으로 기억됩니다.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외부인의 시각에서 보면 독일은 좋은 과거와 부끄러운 과거 모두 비교적 종합적으로 잘 기억하고자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반복적인 교육을 통해 기억을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특히 가해자로서 어두운 역사를 최대한 언급하지 않으려는 일본과 반대되는 독일의 태도는 한국인의 시각에서 흔히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반복적인 교육이 반성 없이 그저 반복되는 수준에서 그치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세대가 지나면서 과거에 대한 무관심이 늘어나는 것은 역사 교육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성찰 없이 ‘너무 많이 가르쳐서’가 아닐까요? 그리고 때로는 무관심을 넘어서 심지어 이에 대한 반발심으로 극단적인 방향으로 선회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독일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일제치하, 한국전쟁, 근대화, 군사독재와 같은 많은 과거에 대해 동일한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또 이것은 비슷한 과거를 경험한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독일의 어두운 사례만을 주로 이야기했지만, 이것은 괴테와 쉴러, 바이마르 공화국과 같은 사항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찰 없는 찬양은 하나의 우상을 만들어 온전한 평가를 불가능하게 할 수 있습니다. ‘세계시민’인 괴테가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시민이 아니라,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세계적인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결국 기억의 문제는 ‘과거에 어떠한 일이 일어났다“라는 사실만을 반복하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기억해야하는가“하는 보다 진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항상 바뀌는 것이고, 그 기억을 보다 올바르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수용하는 우리들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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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in Goethe, Mein Goethe, Unser Goethe:

Wiederholung, Erinnerung und Symbolisierung


  Zwei Wochen in Weimar! Wir sind zwei Wochen lang vielen Spuren von Goethe und Schiller gefolgt, die sich als Weimarer Klassizismus definieren und auf der anderen Seite den dunklen Spuren vom Nationalsozialismus in Buchenwald begegnen. Und die beiden Unterschiedlichen Geschichten Weimars stehen in verschiedenen Weisen zusammen vor uns.


 Es ist nicht einfach zu definieren, wie die Deutschen diese zwei Seiten behandeln. Aber unseren kurzen Blick nach scheint es so, dass die Deutschen sich darum bemühen, die „gute„ und „schändliche„ Seite von eigener Vergangenheit gut zu erinnern. Wir schätzen es ganz hoch, denn es ist einfach schwer seine eigene dunkle Vergangenheit selbst zu verurteilen und zu versuchen, sie nicht zu vergessen. Das ist ganz merkwürdig für uns, Koreaner, weil Japan im Gegenteil ablehnt, die öffentliche Verzeihung zu äußern. Wir zollen den Deutsche große Respekt dafür wie sie ihre Vergangenheit ergeizig behandeln.

 
 Aber einerseits haben wir Sorge. Wenn dieser Prozess die „Gute„ und „schädliche„ Vergangenheit zu erinnern, sich nur wiederholt, würde es kein Sinn machen. Einfache, mechanische Wiederholung ohne Reflexion könnte ein Problem sein. Diese „Wiederholung„ könnte der einen Seite Weimarer Klassikers zur Vergötterung führen, oder auf der anderen Seite „einfache Unterdrückung„ in Namen der „Gerechtigkiet„ den Leuten vermitteln und dadurch wieder extremen nationalismus hervorrufen, ohne Verständniss. Es ist nicht nur das Problem des Deutschen, sondern auch unser Problem in Korea. Wir haben ein ähnliches Problem. Die Erinnerung an die Vergangenheit spielt eine starke Rolle und zwar lernt man schon viel in der Schule über die Vergangenheit der letzten Hundertjahre und wir schauen die Geschichte mit dem Blick eines Opfers an, und ohne dass man es reflextiert. Kein Land ist frei von diesem Problem.

 
 Wir wollen uns nicht fragen: „Was geschah damals in der Vergangenheit?„ Sondern, „Was und Wie würden wir uns als heutige Lebende an die Vergangenheit erinnern?„ Da braucht man ernste Reflexion!

 
 Zum Geburtstang Goethes, möchten wir gerne sagen : Goethe ist ein Weltbürger geworden. Goethes Name stehet nicht nur für die Deutschen, sondern auch für kosmopolistische Humanität. Man muß sich darum bemü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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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발표는 무사히 마쳤고, 반응은 그럭저럭 호응을 받은 듯. '창조적 발표'가 수업 제목이었는데, 글을 교정해주던 독일 친구로부터 '창조적'이라는 소리를 들었으니, 그거 하나만으로도 어느정도는 체면치레는 한게 아닌가 싶고. 혹시 글 쓴걸 줄 수 있겠냐(딱히 잘써서 그랬다기 보다는 내가 잘 못읽어서 그런 것 같다는 느낌이......)는 부탁까지 들었으니, 나쁘지는 않았던듯.

 다만 가장 큰 문제였던 것은,

 이렇게 좋은 날씨와 자유로운 분위기(참고로 가장 편한 자세로 반쯤 누워있는 두 사람이 선생님들이셨음)에서 하기엔 약간 부담스러운 주제의 이야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

posted by Gruenta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