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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발길을 멈추고 주저앉고 말면 우리 삶은 거기서 끝나게 됨이라 - 이청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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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8. 27. 20:45 타인의 시선
 16일 드레스덴을 떠나 바이마르에 도착했다. 2주 동안 문학 세미나에 참가했었다. 수업은 오전 세 시간 오후 두 시간 가량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저녁 먹기전에 시내 박물관이나 명소를 투어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저녁 먹고나서도 일정이 있다. 거기다 숙소와 강의실은 바로 옆 건물이니 며칠 생활하다보니 어느 순간에 중고등학교적 수련회에 온 기분이 들었다.
 
 수업을 들으면서 같이 온 형한테 "덕분에 벌써 개강한것 같아요"했더니 "오히려 개강했으면 하루에 세시간 수업듣고 사람들이랑 편히 밥먹으니까 이렇게 힘들지는 않겠지"라는 대답을 들었을 정도니까, 아무튼 자처해서 한 일이긴 하지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도 독일 오기 전에 세미나에서 다룰 작품들을 번역본으로 읽고 독일에 있는동안 원문 쭉 읽으면 되겠지, 했었는데 그냥 쭉 읽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번역본은 그렇다 쳐도 원문은 그나마도 다 읽지도 못했다.) 비교적 짧은 텍스트들은 상관이 없지만 분량이 많은 텍스트들의 경우 개괄적인 부분은 간략히 다루고 중요한 몇몇 장면들만 골라내서 몇 시간동안 토론하는 스타일이라, 대충 내용만 확인하고 수업에 들어온 나로서는 고생을 안할 수가 없는 상황. 수업 진행방식이 이래저래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번번히 엇갈려서 낭패도 여러번 봤다. 아무튼 덕분에 모처럼 또 헬렌 켈러가 된 기분이었다.

 거기다 세미나도 문제지만, 그 이후의 각종 일정들이 이상하게 놀자고 하는 것 같은데 세미나 이상으로 힘들다. 
혼자돌아다니면 한 시간 안에 다 둘러보고 나올 박물관들을 두시간 넘게 돌아다니면서 설명듣고 구경하려고 하니 무척 충실한 관람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외국어를 집중해서 몇 시간 동안 (수업 끝나고) 또 들으려고 하니 피로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거기다 하루는 옆동네 가서 괴테와 관련된 박물관을 6개나 둘러보고, 또 뜻하지 않게 해부학실까지 둘러보기도 했었는데 그때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듯.(뭔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그대로 하얀색으로 덮여진 그 무엇인가들을 꽤나 많이 봤다.) 결국 이런 일정이 매일이다보니, 심지어 독일답지 않게 주말에도 자유시간이라고는 반나절씩 밖에 없고, 그래서 그냥 수업 듣기에는 부족한걸 알면서도, 부족한 것을 보충할 시간조차도 주어지지 않았다. (사실 그냥 쉬고 싶은데 쉴 시간조차도 없었다,고 말하는게 더 맞는 말일지도.)

 아무튼, 대강의 일정은 끝났고 내일 마무리 차원에서 하는 자발적인 발표 수업들을 마치고 토요일 저녁에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게 된다. 그러고보니 금요일이 괴테 생일이라 여기저기서 뭔가 볼거리가 많을 것 같기도 한데, 세미나를 들으면서 잠깐 관심을 가졌던 괴테와 쉴러를 다시 싫어하기 시작했으니 이젠 상관 없지 뭐. 그리고 이틀 뒤면 개강이고, 거기다 바로 TA일정까지 잡혀서 아침에 학교를 가야하고, 나는 아직 시차적응을 하지 못했을 테고.... 내 방학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이란 말인가?

 p.s. : 다음 포스팅 예고 - 독일에서는 8월 말, 9월 말에 각각 지방선거와 총선거가 실시될 예정이다. 거리 곳곳에 선거포스터도 붙어있는데... 겁나지만 어딘가 우습고 키치적인 면도 있으면서 또 어딘가 위트도 있는 것 같은 극우정당인 독일민족당(NPD)의 선거포스터들을 모아서 올려볼 예정이다. 귀국하기 전에 하고 싶긴 한데, 우선 카메라 안에 있는 사진들을 정리해야하고, 여기 인터넷이 드레스덴 때만큼은 편하지 않아서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정리해서 올릴 예정임. 이거 올리고 비웃는다고 NPD형님들이 쫓아와서 외국인 빨리 꺼지라고 때리지는 않겠지..

p.s : 글을 다시 읽어보니 뭔가 좀 묘하게 운율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어색해서 좀 고쳤다. 그래도 좀 어색한 것 같다. 그리고 괴테 생일은 지난주 토요일(29일)이 아니라 금요일(28일)이었다. 뒤늦게 수정했다.
posted by Gruenta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