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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발길을 멈추고 주저앉고 말면 우리 삶은 거기서 끝나게 됨이라 - 이청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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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5. 23. 23:55 생활의 발견

 2년 전 이맘때 쯤, 나름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스스로 세상을 떠났었다.

 잊으려고 꽤나 노력했던 것 같다. 사실 또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게 된다고, 생각보다 빨리 잊어버렸었던 것 같았다. 1년 동안 독일에 있었던 탓일 수도 있겠지만. 정작 내가 죽는 것 만큼 가장 두려워 하는 것도 없으면서 남이 죽었다는 사실에는, 돌이켜보면 죽은 사람과의 인간관계에 대해 회의감이 들 정도로 무감각하다는 것은 역설일지도 모르겠다.

 2년 뒤 오늘 또 한 사람의 죽음을 보았다. 투표권도 없던 주제에 그래도 그 사람이 됐으면 했었다.  그러고 남들처럼 왜 그럴 수 밖에 없는지 일견 이해는 하면서도 실망도 했었다. 그래도 능력이 될지 모르겠지만 유사 전공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나중에 평전을 쓰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었다.

사실 무슨 말을 해야할지도, 할 말이 있다하더라도 해야알 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부끄러울 따름이다. 나에게는 5월이 잔인한 달이 될 것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한 가지 흠집을 무마하는데 열 가지 세계관을 내세워 낯빛 한 번 바꾸는 일 없이 스스로를 지켜낸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은 한 줌 봄바람에도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원망하다 끝내 주변과 스스로를 망친다. 비아냥 섞인 세상의 손가락은 주로 후자를 겨냥한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자멸하는 순간, 세상의 손가락들은 가장 빠르고 침통하게 애도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구제한다. 그렇게,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이 조금씩 사라져간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살아남기에 세상은 너무 어른스럽고, 아프다. 언젠가는 그런 사람이 한 명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퍼온 곳
posted by Gruenta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