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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발길을 멈추고 주저앉고 말면 우리 삶은 거기서 끝나게 됨이라 - 이청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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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7. 14:53 기억의 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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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주택 건설과 개인적 주택 소유를 핵심으로 한 한국 주택정책의 특성, 정부와 재벌기업 간의 긴밀한 유착관계, 권위주의 정부가 주도한 급격한 경제성장, 정부가 통제한 주택 양산 과정이 특수한 구조, 경제성장의 국가적 목표를 뒷받침한 서울의 도시계획 등은 한국에서 아파트 단지 건설이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활발하게 전개됐던 이유를 설명해 준다. 이처럼 아파트 단지는 도시 형태의 측면에서 한국 경제의 '기적'을 낳게 한과정과, 30년에 걸친 농경토지사회에서 도시산업사회로의 급격한 이행을 반영한다. 건설 회사와 분양 희망자들에게 엄청난 이윤을 남겨준 분양가 통제제도는 이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주민들은 주택을 양산하는 도시계획 안에서 하나의 집합적 세력으로 고려되고 움직였던 존재였다. 처음에 서울 주민들은 아파트에 대한 저항세력을 형성했다. 그러나 새로운 주택 형태를 전파하기 위한 정부의 전략이 도시 역동성을 강남으로 재분배하면서 대규모로 시행되자 여론은 급선회했다.


이러한 여론의 급선회가 국가의 권위주의적 통제의 산물만은 아니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이 사회적 지위를 주장하는 방법에도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1960년대 말만 해도 하위 계층의 주택 유형으로 간주되던 아파트가 왜 점차로 도시 중산층을 대ㅛ하는 특성적 기호의 하나가 됐는가를 설명해 준다. 또한 주택 시장과 임대 시장에 각 개인의 접근 방법을 결정하는 경제적, 물질적 조건들은,어떻게 중간계급 대다수가 아파트 단지의 대규모 개발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하는 구조를 발곃준다. 결국 '아파트'는 상품이 되고, 재테크의 수단이 되었다. 권위주의 국가는 인구 성장을 관리하고 봉급생활자들이 경제 발전에 헌신하도록 가격이 통제된 아파트를 대량 공급하려 했다. 그리하여 중간계급을 대단지 아파트로 결집시키고, 이들에게 주택 소유와 자산 소득 증가라는 혜택을 주었으며 그들의 정치적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다. 결국 이러한 상호 혜택의 구조 때문에 한국의 도시 중산층과 중간계급 일반이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하층의 사회계층으로부터 공간적으로 분리될 수 있었다. 주거 공간의 획일화를 너무도 쉽게 수용하는 한국인들의 문화적 무관심은 이렇게 해서 허용되었다. 한마디로 말해 한국의 아파트 단지는 권위주의 산업화의 구조와 특성, 여기서 비롯된 계층적 차별 구조와 획일화된 문화양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이자 그 산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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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원형과는 매우 달라진 아파트단지라는 공간조직과 주거 환경 안에서, 인간관계를 통해 나타나는 전통과 현대성의 문화적 구조는 어떤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나? 전체적으로 볼 때 단지 내 가족의 사회성에 대한 분석은, 그 구조와 행동 면에서 사회가 현대화됐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나 생활양식의 변화가 사적인 영역 안에서 개인 간의 고나계(부모관계, 특히 남녀 고나계)를 특징짓는 기본적인 규범을 사라지게 하지는 않았다. 반면, 아파트 단지 안에서 경비원이나 관리사무소를 매개로 행해지는 개인에 대한 통제는 전통적인 동네에서 행해지는 통제방식을 이어간 형태로 결론짓기는 어렵다. 골목길과 같이 준사유지적 공간에서 공동체적 형태로 행해지는 전통적인 방식과는 달리 아파트단지는 공적인 통제를 그 핵심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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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지 아파트는 도처에서 대규모 도시문제뿐 아니라 정치적 초점들을 결집시키며, 여러 형태의 감시체제를 발전시키고 있다. 대단지의 형태는 그 자체로 사회 공간적 차별화를 낳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러한 차별화를 고착화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또한 대단지 아파트는 장기적으로 관리와 유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필연적으로 그 비용을 더 즈앧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도시 형태의 견고함을 취약하게 만들어 프랑스에서처럼 쇠락의 길로 접어들거나, 한국에서처럼 일상화된 재개발의 결과를 낳는다. 주택이 유행상품처럼 취급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별로 깊이 생가갛지 않는 문제이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대단지 아파트는 서울을 오래 지속될 수 없는 하루살이 도시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posted by Gruenta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