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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발길을 멈추고 주저앉고 말면 우리 삶은 거기서 끝나게 됨이라 - 이청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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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는 나를 찾아왔지만 - 이창동, 시(2010)


 오늘부터 영어공부 해야지, 오늘부터 다이어트를 해야지, 온라인 게임을 줄여야지 하는 일상적인 다짐을 우리는 늘 한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런 일상적인 다짐은 늘 친구들과 한 약속, 회식, 모임 등과 같은 일상적인 다른 일들 때문에 작심삼일도 못가고 ‘내일부터는 꼭’이라는 말로 미루다가 결국 영원히 다짐으로만 남게 된다. 이창동의 『시』(2010)의 주인공 미자(윤정희 분)도 마찬가지다. 길에서 본 시 창작 교실 포스터를 보고 그녀는 그동안 다짐했던 것을 실천하려고 한다. 아마도 미자가 기대했던 시작(詩作)은 파블로 네루다의 자전적 시의 이미지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우리의 결심을 예기치 않게 방해하듯이, 미자의 결심도 주변 사람들로 인해 계속 방해를 받는다. 딸을 대신해 맡아 기르는 손자로 인해 같은 학교 여학생이 자살한 사건이나, 강노인(김희라 분)의 노골적인 성적인 요구는 현실이 네루다가 생각했던 그 아름다움과는 너무나 차이가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술 더 떠서 용기를 내서 찾아간 시 낭송 동호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래도 어딘가 다를 것이라 생각했던 시 낭송 동호회에는 수상쩍은 아저씨가 모든 시를 음담패설과 연결시켜 주인공이 생각하는 그 아름다운 ‘시’를 더럽히기까지(?) 하고, 뒷풀이에 참석한 한 시인은 절망한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되는 일이 하나도 없냐?”라는 불평이 안 나올 수가 없는 전개다. 하지만 윤정희가 말했듯이, 이런 시련들을 통해서 영화는 “노인들에게는 대화가 없다. 친구도 없다. 그래서 외롭다.”*
는 사실을 드러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외로움은 더 나아가 타인과 소통을 못하게 만든다. 외로움은 시의 소재될 수 있겠지만, 소통 불가능성은 시를 쓰기 어렵게 만든다.


 더군다나 문제는 타인에게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있고, 이 문제는 보다 결정적이다. 자신과 소통하는 것에도 문제가 발생한다. 시를 쓰고자 하는 그녀의 호기심은 점차 증가하지만 그와 반비례하여 이것을 표현할 언어적 표현력이나 기억력은 떨어진다. 그래서 “존재가 없어질수록 세상에 대해 더 자주 더 많이 말을 거는데 돌아오는 답이 없”*어 미자는 답답해하고(그래서 시를 쓰지 못하고), 또 그런 미자를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자의에서 비롯된 것이든 타의에 따른 것이든 이러한 미자의 고립은 역설적으로 미자를 자살한 소녀인 희진으로 이끌게 한다. 주인공에게 희진의 죽음은 처음에는 그저 병원서 나오는 길에 마주친 우연한 사건에 불과했지만 점차 자신과 밀접한, 가족과 금전 문제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주인공에게 납득할만한 답을 그 누구도 주지 않고 사람들은 그저 입을 닫거나 무마시킬 생각만 한다. 결국 미자는 스스로 답을 찾아 나섰고, 이 과정은 시를 쓰기 위한 노력과 자연스럽게 합쳐지면서 그녀가 희진의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그래서 두 사람의 시는 “어른들의 거짓”*이 무엇인지를 드러낸다. 여기서 형사의 역할도 한 몫을 한다. 이 '비호감 형사'가 내부 고발 경력으로 좌천됐다는 사실을 미자가 알게되자 그의 진정성을 깨닫고, 소통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비록 미자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시는 찾아왔고, 소통의 문제를 겪었던 그녀를 세계와 다시 합일시켜 주었다. 그래서 열린 형식의 결말은 미자는 시를 통해 희진과 동일화 되고 그 거짓을 견디지 못하였지만 그녀와 같은 선택을 취하지는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 직접인용한 내용(*)은 모두

고재열,「빵점 시나리오라니? 수우미양가의 수다(윤정희 인터뷰)」, 『시사인』, 143호, 2010. 에서 참고한 것임.

 

 

posted by Gruentaler